반응형

<빈사의 사자(The dying Lion of Lucerne), 루체른>


  지금은 스위스 하면 부유한 유럽의 중립국가로 알고 있지만, 중세시대만 하더라도 스위스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내륙국이라 무역과 산업이 발달할 수가 없었고, 수입이 없으니 가난할 수 밖에 없는 나라였다.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그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왕가와의 끊임없는 전투까지....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전투에 전투를 거듭한 결과, 다른 나라보다 뛰어난 전투력을 보유하게 된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스위스가 선택한 것은 뛰어난 전투력을 가진 스위스 용병을 다른 유럽 국가로 수출해서 그 몸값으로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다.

  루체른에 있는 빈사의 사자상(The dying Lion of Lucerne)에는 중세시대 용병으로 먹고 살던 시절과 얽힌 슬픈 이야기가 있다.

  유럽 여기저기로 스위스의 용병을 수출하던 그 시절, 그 중 한 곳이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있던 프랑스였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루이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혁명군에 포위되었을 때 궁전을 마지막까지 지킨 것은 프랑스군이 아니라 스위스 용병이었다. 수비대 모두 도망갔지만 스위스 용병 700여 명은 남의 나라의 왕과 왕비를 위해 용맹 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최후를 맞았다. 혁명군이 용병들에게 퇴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도 스위스 용병은 계약 기간이 남았다는 이유로 그 제의를 거절했다. 당시 전사한 한 용병이 가족 에게 보내려 했던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가 신용을 잃으면 후손들이 영원히 용병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죽을때까지 죽음으로 계약을 지키기로 했다.'

이 때 죽어간 용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빈사의 사자상'이다.

우리가 잘 아는 마크 트웨인도 이 빈사의 사자상을 보고 "세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는데, 그가 쓴 유럽 방랑기에 빈사의 사자상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사자는 자신의 갈기를 깎아지른 절벽 아래의 은신처에 드리웠다. 그는 절벽의 살아있는 돌에서 깎아낸 사자이기 때문이다. 사자의 크기는 웅장했고, 그 자세는 고귀했다. 그 어깨에는 부러진 창이 꽂혀 있는채, 사자는 고개를 숙이고서 그 앞발로 프랑스의 백합을 지키고 있었다. 절벽에 드리운 덩쿨은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절벽 위에서 맑은 샘물이 흐르다 저 아래 연못으로 떨어저내렸다. 수련이 핀 연못의 부드러운 표면 위로 사자의 모습이 비쳤다. 그 주변에는 녹음이 우거졌다. 이 곳은 소음과 복잡함과 혼란에서 떨어져 차분한 숲의 구석에서 보호받고 있다. 이 사자가 죽어갈 곳으로는 예쁘장한 철제 난간을 쳐둔 소란스러운 광장의 화강암 받침대가 아니라 이곳이 걸맞았다. 루체른의 사자는 어디에 있던 인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만큼 그의 모습이 인상적일 곳도 없으리라.
- 마크 트웨인, 유럽 방랑기(A Tramp Abroad), 1880


  화살을 맞고 고통스러워 하는 사자의 표정이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이 되어서인지, 벤치에 앉아 보고 있노라면 울컥하면서 가슴 한켠이 저려와서 한동안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스위스의 힘들었던 시절의 슬픈 얘기가 남겨져 있는 빈사의 사자상 감상은 이 쯤에서 끝내고, 자리를 옮겨서 루체른을 구경해보기로 했다.


  루체른은 뮤제크 성벽과 구시가지를 둘러볼 경우 하루 정도면 여유있게 둘러보고도 시간이 약간 남을 정도로 작은 도시이다. 그렇지만, 루체른과 리기산을 하루만에 둘러보기에는 촉박하다.

  굳이 둘 다 하루만에 둘러보고 싶다면 아침 일찍 리기산을 갔다가 오후에 루체른 시내를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리기산이 융프라우나 쉴트호른, 마터호른처럼 만년설로 덮여있을 만큼 높진 않다고 하더라도 한라산 정도의 높이는 되기 때문에 루체른과는 달리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필자도 스위스에 머무르는 동안 하루는 리기산을 들렀었지만 구름 낀 정상만 구경하다 왔다.

  그러고보니, 스위스의 유명한 산 정상을 방문했을 때는 모두 눈이나 비, 아니면 짙은 안개가 반겨주었구나. (산은 역시 나랑 안 맞아...)

윽2


 추천 코스


  빈사의 사자상은 루체른 구시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여기 부터 들렀다가 돌아오면서 나머지 구시가와 다리들을 구경하는 것을 추천한다. 빈사의 사자상 근처에 꽃보다 할배에서도 나왔던 거울 미로가 있는 빙하공원도 있으니, 시간이 되면 들러봐도 좋겠다.


<뮤제크 성벽(Musegg)>


빈사의 사자상을 보고 오는 길에 뮤제크 성벽에 오른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거 같은 좁은 성벽 위에 서면 루체른 시내와 루체른 호수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루체른 시내 전경>


성벽을 한 바퀴 돌고 구시가로 내려와서 시청광장(Weinmarkt)에 이르면 건물 외벽의 프레스코화가 눈길을 끈다.


<Weinmark 광장>


<Weinmark 광장의 건물들>


제법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프다. 워낙에 물가가 비싼 스위스지만, 루체른에 들를 때 마다 가는 식당이 있다. Zum Weissen Kreuz 라는 3성급 호텔에서 운영하는 식당인데, 해산물을 구경하기 힘든 유럽 내륙지방에서 문어와 새우가 들어간 시푸드피자를 맛 볼 수 있어서이다.


<Zum Weissen Kreuz의 Seafood Pizza>


여유있게 밥을 먹었으면 이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라고 하는 카펠교 구경에 나선다. 카펠교는 중간의 급수탑과 다리 천정에 삼각형 형태의 그림 147점이 유명한데, 이 그림들 중 대부분이 1993년에 담배꽁초 때문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면서 현재는 30점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카펠교 천정의 화재 흔적과 그림들>



<강 한 켠의 제라늄과 카펠교, 그리고 급수탑>



<멀리 보이는 뮤제크 성벽,  슈프로이어 다리(Spreuer Bridge)>


사람들이 잘 모르고 지나치는 또 하나의 목조다리가 슈프로이어 다리(Spreuer Bridge)이다. 이 다리는 1408년에 완공된 도시 요새의 일부로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다리의 천정에 화가 카스파르 메글링거(Kaspar Meglinger)가 그린 “죽음의 춤(Dance of Death)”이라는 이름의 그림 67점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다리의 이름은 밀의 겉껍질을 이곳에 버린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제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다. 슬픔에 젖은 사자상과 루체른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뒤로 하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루체른 역 광장>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