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연꽃이 피려면 몇 달이나 남았지만, 문득 연분홍빛 연꽃이 생각났습니다.

  연꽃은 빛 한점 없는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진흙을 뚫고 올라와 마침내 환한 꽃을 밝히는 식물입니다. 겨우내 얼어붙은 연못 바닥의 진흙 속에서 견뎌내는 연꽃 뿌리는 또 얼마나 그 생명력이 질긴 걸까요.

  박노해 시인의 시집 '겨울이 꽃핀다'에 실린 '연꽃 뿌리'라는 시를 읽다 보니 오늘따라 그 질긴 생명력이 한없이 부러우면서도 저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날입니다.

연꽃 뿌리

   - 박노해

  

허공 같은 흐린 물 속에

제 몸을 담그고

속됨 속의 참됨만을 파고들어

순정한 꽃을 피워올린

연꽃 뿌리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해가고

사람도 세상도 빠른 물살로 흘러가는데

나는 영영 변함없을 듯한 절대 진리 속에다

부동의 뿌리를 박고 서 있는 건 아닌가

맑고 시린 물 속에 몸을 가둔 건 아닌가


본디 속되고 맑음이 어디 있으랴

이 썩어드는 듯 보이는 연못 세상에도

어디선가 쉬지 않고 맑은 물줄기는 흘러들고 있으니

아무리 못된 사람도 그 안에는

빛나고 순정한 구석도 숨어 있으니


걸어 들어가라

온갖 욕망이 흘러드는 시장 가운데

먹고 사는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리고

저 거센 변화 속에 뿌리를 내리고


발버둥쳐도 아무리 발버둥쳐도 끝이 어디인지

앞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막막한 흐름 속에서

그 물에 물듦으로 탁류를 뚫고

속됨 속의 참됨을 캐 들어가야 하리


흐린 물 속에서 한 생을 발버둥치다

마침내 물안개 오르는 첫새벽

타악--

연꽃 터지는 소리


탁한 세상 갈라치는

시린 죽비 소리


    - 박노해 시집 "겨울이 꽃핀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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