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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화, 2018년 3월>


서울에서 맨 먼저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꽃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거의 없던 화창한 초봄의 하늘을 보고 아내와 함께 집 근처 산책을 나섰습니다. 요 며칠 날씨가 따뜻해서 이른 봄에 피는 꽃 구경을 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길을 나섰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개불알풀 같은 야생화만 간간이 눈에 띄고 꽃나무들은 이제서야 겨우 새순을 피워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걷다가 근처에 보이는 카페에서 잠시 쉬러 들어가려는데 나무에 노란 꽃이 달린 것이 보입니다. 산수유인가 아닌가 하면서 다가갔는데 꽃잎이 기다랗게 뻗은 것이 산수유는 아니고, 처음 보는 꽃입니다. 

  꽃 검색 기능으로 찾아보니 서울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꽃인 풍년화라고 합니다.



풍년화의 생태

  이른 봄에 피는 꽃나무 대부분이 그렇듯이 풍년화도 노란색의 꽃이 4월에 먼저 핀 후에 잎이 나중에 피는 꽃입니다. 

  높이 5~10m 정도 자라는 낙엽 관목으로 잎의 길이는 꽃이 진 다음에 4~12cm로 마름 잎 비슷한 타원형으로 피어납니다.

  외래종으로 우리나라에는 1930년경에 들여와 임업연구원 구내 수목원에 처음으로 심었다고 합니다. 서울지방에서는 봄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화사하고 소담스러운 꽃이 가지 위에 담뿍 피거나 이른 봄에 일찍 꽃이 피면 풍년이 온다는 설도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름도 풍년화라고 붙여진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는 이 꽃을 Witch-Hazel이라고 하는데 잎과 껍질에서 추출한 것을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일본이 원산지인 풍년화는 4월에 잎보다 먼저 황색 꽃이 만발하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만작(滿作)이라고도 하며 꽃은 전해에 자랐던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1개씩 또는 여러 개가 모여 달립니다. 

  풍년화는 일본 외에도 중국과 미국에서도 자라는데 중국에서는 풍년화를 꽃잎이 꼭 황금색 실같이 보인다고 해서 금루매(金缕梅)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미국 원산의 풍년화는 버지니아풍년화라고 합니다. 유럽에는 원래 풍년화가 자라지 않았는데 신대륙 발견 후 미국의 버지니아 풍년화가 영국으로 건너가서 자라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서양 풍년화라고 불리는 품종들은 가을에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원래 4월에 피는 꽃이라고 하는데 3월 중순에 꽃이 핀 것을 봤으니 올해는 풍년이 오려나 봅니다.


  오늘도 박노해 시인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 실린 시 한 편으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 박노해


눈 녹은 해토에서

마늘 싹과 쑥잎이 돋아나면

그때부터 꽃들은 시작이다


2월과 3월 사이

복수초 생강나무 산수유 진달래 산매화가 피어나고

들바람꽃 씀바귀꽃 제비꽃 할미꽃 살구꽃이 피고 나면


3월과 4월 사이

수선화 싸리꽃 탱자꽃 산벚꽃 배꽃이 피어나고

뒤이어 꽃마리 금낭화 토끼풀꽃 모란꽃이 피어나고


4월의 끝자락에

은방울꽃 찔레꽃 애기똥풀꽃 수국이 피고 나면


5월은 꽃들이 잠깐 사라진 초록의 침묵기

바로 그때를 기대려 5월 대지의 심장을 꺼내듯

붉은 들장미가 눈부시게 피어난다


일단 여기까지, 여기까지만 하자


꽃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대로 피어난다

누구도 더 먼저 피겠다고 달려가지 않고

누구도 더 오래 피겠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꽃은 남을 눌러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겨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자신이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

꽃은 서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中 p.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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