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하루 만에 지는 꽃, 원추리 (Daylily) 

  7월, 

이제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등 뒤로 땀이 흘러내리는 걸 보니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한낮에는 도저히 밖을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로 따가운 햇볕 덕분에, 햇살의 위세가 좀 누그러지는 느지막한 오후가 되어서야 근처에 산책하러 나가곤 합니다. 산책하러 나가보면 이 더운 여름날에도 피어 있는 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짙어가는 신록 속에서 자신의 매력을 뽐내려다 보니, 봄날의 소박하고 소담스런 꽃보다는 좀 더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꽃들이 많이 눈에 뜨입니다. 그중에서도 근처 공원이나 주변의 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란색 혹은 주황색의 크고 화려한 꽃잎을 자랑하는 원추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원추리는 꽃이 하루 만에 지는 아스파라거스 목-원추리 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노랑원추리는 낮 4시 무렵부터 피기 시작해서 다음 날 11시 무렵에는 시들어버립니다. 하루 만에 피고 시들어버린다고 서양에서는 Daylily 라고 부릅니다. 학명은 Hemerocallis 라고 하는데, 하루를 뜻하는 그리스어 Hemera 와 아름답다는 의미의 callos 가 합쳐져서 Day lily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온대지역에서 자라던 자생식물인데 화려함 덕분인지 세계 각지에서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하고 있기도 합니다. 


원추리의 다른 이름들 - 망우초(忘憂草), 득남화(得男花), 의남화(宜男花), 금침화(金枕花)

  의남화(宜男花) 혹은 득남화(得男花)라고 불렀던 것은 원추리꽃의 봉오리가 마치 사내아이의 그것과 닮아서 임신부가 원추리 봉오리를 품고 다니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망우초(忘憂草)라는 이름은 나물을 무쳐 먹거나 꽃을 차로 우려내어 마시면 의식이 몽롱하게 되고 근심을 잊게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민간에서는 근심풀이 풀로 알려져 있는데, 이 또한 잎에 남아 있는 독성물질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금침화(金枕花)는 원추리꽃에서 나는 향기가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물질이 들어 있다고 믿어서 꽃을 말려 배게 속을 채웠다고 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

원추리의 효능, 그리고 잡담

  최근 방영 중인 효리네 민박에서 손님이 마당에 자라는 민들레를 무쳐서 민들레 나물을 해 먹는 장면이 나온 것처럼 들판에 자생하는 풀들은 뜻밖에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원추리도 이른 봄에 어린잎을 따다가 데쳐서 초고추장에 무쳐 먹거나 갖은 양념을 해서 나물로 무쳐 먹을 정도로 대표적인 봄철 산나물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꽃과 뿌리는 약용으로 사용하였는데, 특히 뿌리는 예전부터 한방에서 훤초(萱草)라는 이름의 한약재로 이뇨, 지혈, 소화제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뿌리에는 Colchicine이라는 독성 성분이 있어서 일반인이 함부로 다루는 것은 위험합니다. 최근에는 약초라기보다는 원예식물로만 가꾸는 편입니다. 


  1900년대 초에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존 크레인(John Curtis Crane)의 부인인 플로렌스 여사가 1931년에 펴 낸 [Flowers and Folk-lore from far Korea] 에도 원추리에 대한 내용이 나올정도로 흔하면서 민중의 삶에 녹아들어 있던 꽃입니다.

"This Lily is Korea's cure

 For everybody's troubles ;

Its leaves as food bring heirs for sure,

Whene'er the kettle bubbles"


Acres of these Lilies on the grassy mountain slopes are one of the glories of Korea. The roots are poisonous, but are a reliable physic 

of the old Apothecary.


- [Flowers and Folk-lore from far Korea], Florence Hedleston Crane, 1931 -



지나가며 만나는 꽃 한 송이에도 참 많은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내일 지나며 만나는 꽃에는 또 어떤 숨은 이야기가 있을지 기대됩니다.


참, 원추리의 꽃말은 "지성(至誠)", "아양 떨다", "근심을 잊는다"라고 합니다.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 중 "근심을 잊는다"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요즘 가장 와 닿는 일야현자경(一夜賢者經)에 나오는 구절이 떠올라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를 따르지 말라. 미래를 바라지 말라. 한 번 지나 가버린 것은 이미 버려진 것, 그리고 미래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당면한 현재의 일들을 자신의 처지에서 잘 살펴 흔들림 없이 바르게 판단하라. 그리고 그 경지를 더욱 넓히라. 다만, 오늘 해야 할 일에 전력을 기울이라. 누가 내일에 죽음이 있을지 알 수 있는가… - [대장경, 일야현자경(一夜賢者經)]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