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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예전에는 4월이면 항상 라디오나 방송에서 언급하던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을 인용하곤 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4월은 잔인한 달...'은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 The Waste Land'의 1장의 첫 구절입니다. 이 시는 5장으로 구성된 433행에 달하는 아주 길고 난해한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번역본을 봐도 선뜻 머릿속에 내용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5장의 제목은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죽은 자의 매장(The Burial of the Dead)

2. 체스 게임(A Game of Chess)

3. 불의 설교(The Fire Sermon)

4. 익사 (Death by Water)

5. 천둥이 한 말 (What the Thunder Said)

  

The Waste Land

        - T. S. Eliot


  “Nam Sibyllam quidem Cumis ego ipse oculis meis

  vidi in ampulla pendere, et cum illi pueri dicerent:

  Σίβυλλα τί θέλεις; respondebat illa: ἀποθανεῖν θέλω.”


         _For Ezra Pound

         il miglior fabbro_    

    

      I. THE BURIAL OF THE DEAD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 



황무지

        - T. S. Eliot


  “한번은 쿠마에(Cumae, 나폴리 북서부)에서 무녀가 조롱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아이들이 무녀에게 '무녀야 넌 뭘 원하니'라고 물었을 때,

  무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_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_ 

    

      I.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

  시 전문 : 엘리엇의 시, 황무지

  이 장문의 시의 도입부에 나오는 쿠마에 무녀에 관한 인용구는 로마의 네로황제 시대에 페트로니우스가 남긴 소설 [사티리콘(Satyricon)]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소설에서 딱 두 줄 정도 분량의 대화 내용이라고 하는데, 어떤 분의 블로그에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습니다. 

  참고 : 사티리콘(Satyricon A.D 65)이라는 책을 읽게 된 이유

  영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딥 퍼플 Deep Purple의 노래 중에 'April'이라는 곡이 이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영감을 받아서 쓴 곡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다시 들어보니 8분 40여초의 연주가 끝난 후 시작되는 노래 가사가 'April is a cruel time'이네요.

  T. S. 엘리엇이 표현한 4월이 잔인한 이유는 망각의 눈(雪)으로 덮인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지만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다시 살아야만 하는 계절의 시작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창밖은 이미 생명이 꽃피고 온통 녹색으로 물들었는데 마음속 한쪽이 여전히 허허로운 것은 아직도 뚫고 나와야 할 새싹이 남아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다시 피어나는 생명과 삶에 대한 희망으로 '잔인한' 4월의 마지막 날을 잘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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