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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옵니다. 밤사이에 제법 많은 비가 왔나 봅니다. 창가에서 보이는 운동장의 색깔이 짙은 색으로 변한 걸 보니 비가 그치고 나면 들풀이 들불처럼 올라올 것 같습니다.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장마철이면 항상 듣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Piano Concerto No.2 in C minor, Op.18)이 생각납니다. 이 피아노협주곡 2번은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삽입곡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래에 첨부한 동영상은 정명훈의 지휘에 예브게니 키신(Evgeny Kissin)의 피아노 연주입니다. 

 

  총 3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악장 단위로 나누지 않고 연결된 동영상입니다. 악장별로 찾아서 듣고 싶다면 아래의 시간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0:50 1st mvt : solo entry 
    1:20 orchestra entry 
    7:51 good part 
    12:30 coda of the first mvt 
    13:08 start of mvt 2 adagio sostenuto 
    17:30 other great part 
    21:16 small cadenza 
    24:20 2nd mvt ending 
    25:55 start of 3rd mvt 
    27:47 3rd mvt theme (orchestra) 
    28:25 3rd mvt theme (piano)  
    36:11 little cadenza before the coda 
    36:26 coda

 

최후의 낭만주의자 라흐마니노프(Sergei Vasilyevich Rachmaninoff)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24살에 작곡했던 교향곡 1번을 뺄 수가 없습니다. 1873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라흐마니노프는 4살때 자청해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 9살에 페테르스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고, 3년 뒤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하면서 아직 10대였던 17살에 피아노협주곡 1번을 작곡합니다. 이렇게 잘나가던 그는 24살이 되던 해에 교향곡 1번을 발표하지만 평단의 혹평을 받게 됩니다. 당시 러시아 음악계를 대표하던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 중 한 명인 세자르 큐이는 "이집트의 10가지 재앙을 묘사한 것 같다. 지옥의 음악원에서나 존경받을 법하다"고 악평을 합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평단의 악평에 라흐마니노프는 실의에 빠지면서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나는 갑작스런 발작을 일으켜 졸도라도 한 듯 멍한 나날을 보냈다. 

손이나 머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렇게 실의에 빠진 라흐마니노프는 작곡을 포기하고,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하면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러시아의 명의로 소문난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 박사를 찾아갑니다. 꾸준한 심리요법의 효과로 1901년에 피아노협주곡 2번을 완성하고,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비공식"으로 초연을 하면서 극찬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피아노협주곡 2번을 자신의 우울증을 치료한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 헌정합니다. 비공식으로 초연을 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교향곡 1번을 발표하면서 받은 평단의 악평에 대한 상처가 아직 여물지 않아서겠지요. 

  피아노협주곡 2번으로 재기에 성공한 라흐마니노프는 그 후 교향곡 2번, 피아노 협주곡 3번, 교향적 무곡 등의 작품들을 발표하며 유럽을 오가면서 연주를 하다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러시아를 떠나 노르웨이로 향했다가 1918년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1악장 Moderato

  묵직하고 장중한 피아노 독주 뒤에 따라오는 관현악의 선율과 그 뒤를 이어 다시 피아노가 센티멘털하고 감미로운 선율을 연주하는 1악장을 듣고 있으면 우울증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작곡가의 심정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1악장을 계속 듣고 있자니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의 그림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가 떠오릅니다. 런던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이 그림을 보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는데, 1악장의 느낌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 흡사합니다.

 

2악장 Adagio sostenuto

  2악장은 1악장의 음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마음을 달래주는 듯한 선율이 이어집니다. 오케스트라의 서정적인 연주로 시작하여 피아노가 그 뒤를 따르고, 플룻이 다시 감미로운 선율을 더하고, 이를 클라리넷이 받아주면서 조화를 이루어갑니다. 눈물을 마음껏 흘리고 싶을 때 1악장을 듣는다면, 2악장은 실컷 눈물을 흘리고 난 후에 누군가 토닥여주는 느낌입니다.

  2악장의 주제를 차용해서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삽입곡으로 사용되어 유명해진 팝송 'All by Myself'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노래를 만들 당시 미국내에서의 저작권은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려 있었지만, 해외의 경우는 여전히 저작권이 걸려 있는 상태라서 수입의 12%를 로열티로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3악장 Allegro scherzando

  오케스트라의 서주로부터 고조되기 시작해서 앞의 두 악장에 비해 활달하고 힘이 넘치는 연주가 이어집니다. 연주는 점차 고조되어 현란한 피아노 테크닉과 함께 벅차오르는 환희와 승리의 느낌으로 마무리됩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의 추천 음반은 리히테르(Richter)의 피아노에 카라얀이 지휘한 음반을 다들 추천합니다만, 저는 Ashkenazy가 연주하고 Andre Previn이 지휘한 음반이 더 좋습니다.

 

  간만에 비가 와서(지금은 그쳤지만) 멜랑꼴리한 음악이 생각이 났는데, 내리는 비를 보면서 우울함에 빠지기보다는 그냥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나 봅니다. 아침나절부터 끄적이기 시작해서 오전에 마무리하려고 했던 글인데 하루가 끝날 즈음에야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내일은 좀 밝고 활기찬 음악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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