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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피는 계절

  볼 일이 있어 잠시 나왔다가 무심결에 골목 어귀를 보니 분홍색 꽃을 피운 꽃나무가 한 그루 보입니다. 가까이 가보니 골목 담벼락 아래 공유지에 고운 복사꽃을 피운 나무 한 그루가 골목 입구를 지키고 서 있습니다. 복사꽃이라고 하니 낯선 꽃처럼 들리는데, 복사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의 이름이 복숭아입니다. 그래서 복숭아꽃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복사꽃은 원래 4월 중순이나 되어야 피는 꽃인데 올해는 겨울도 춥지 않고 봄이 빨리 찾아와서인지 일찍 피었나 봅니다.

  얼핏 보면 큰 벚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매화, 벚꽃, 복숭아꽃, 살구꽃, 자두꽃이 모두 같은 벚나무속(Prunus)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복사꽃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사자성어가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있네요.

  무릉도원(武陵桃源)은 고대 중국의 시인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세속을 벗어나 신선이 머무는 복숭아꽃이 만발한 아름답고 평화로운 별천지를 뜻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말하는데, 도원향(桃源鄕)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서양의 유토피아와 파라다이스와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는 게 팍팍해서 뭔가 다른 세상을 꿈꾸는 건 동양이나 서양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무릉도원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런지 복사꽃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초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노래 '고향의 봄'의 가사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에 나올 정도로 예전에는 흔한 꽃이었는데,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어느새 벚꽃이 봄을 상징하는 꽃이 되어버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왕이나 선비들은 이 땅을 이상적인 세계라고 생각한 도원향으로 만들려는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의도적으로 곳곳에 복사나무를 심기도 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조선시대의 화가 겸재 정선이 봄을 즐기는 모습을 그린 그림 [필운대상춘]에도 인왕산 아래의 필운대에서 꽃놀이를 즐기는 선비들과 분홍색의 복사꽃의 나옵니다. 인왕산 아래에 있는 필운대는 지금은 배화여고가 들어선 곳으로, 조선시대에 아주 유명한 꽃놀이의 명소였다고 합니다.

<겸재 정선/필운대상춘>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래도 봄이라고 꽃은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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