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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明滅)하는 가을

Jason H. 2025. 12. 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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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옷을 입기엔 살짝은 덥고, 가을옷만으로 외출하기엔 싸늘한  그 어중간한 계절의 기온은, 이 짧은 계절이 지닌 불안정한 아름다움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따뜻함과 추위의 경계에서 아슬하게 흔들리는 공기처럼, 가을도 순간순간 명멸하며 지나갑니다.

 

  가을은 늘 불빛 같습니다. 멀리서 보면 환하고 선명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금세 흔들리고, 손에 잡으려 하면 이미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인지 가을을 걷다 보면 우리는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떨어지는 잎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선선하다 못해 약간은 차가운 바람을 한 번 더 느껴 보게 됩니다.

 

  낮과 밤의 경계가 길게 늘어지는 저녁 무렵, 가을은 가장 또렷하게 빛납니다. 사람들은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길가의 나무들은 마지막 잔광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입니다. 그러나 그 반짝임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몇 분만 지나도 색은 흐려지고, 잎사귀는 어둠 속으로 스며듭니다. 그렇게 가을은 매일 저물고, 또 매일 짧게 타오릅니다.  짧은 햇살과 이후에 찾아오는 긴 어둠을 바라보며 붙잡고 싶은 순간들, 오래 머물고 싶은 온기들, 그러나 필연적으로 흘러가는 시간들. 아쉬움이 남아도, 그 아쉬움 덕분에 더 깊이 바라보게 되고, 더 천천히 걷게 됩니다.

 

  명멸하는 가을은 스스로를 숨기거나 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잠시 머문 뒤 스러질 줄 알기에, 있는 그대로 빛나고, 있는 그대로 사라질 뿐입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슬프며, 그래서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다음번 빛남이 찾아올 때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그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깊은 가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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