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네덜란드의 화가 중 가장 잘 알려진 화가로 렘브란트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를 꼽을 수 있겠지만, 내게는 델프트에서 태어난 화가인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작품들이 더 아련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대략 35점 정도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가장 대중에 널리 알려진 작품이 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다. 암스테르담의 국립박물관(Rijksmuseum)에도 베르메르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나, 제일 잘 알려진 작품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헤이그에 있는 Mauritshuis에 소장되어 있다. 네덜란드를 가게 되면 꼭 보고 싶은 그림 중 하나였기 때문에 헤이그를 한 번쯤은 들러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헤이그 추천 관광 코스

  헤이그시 홈페이지에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도록 관광객을 위한 몇 가지의 추천 경로 및 간단한 설명을 곁들여 놓은 웹페이지가 있다. 
  내 취향에는 'A royal walk past palaces and monuments'가 적당해 보였다. 
  각자 성향에 따라 적당한 경로를 고르면 되겠다.
  추천 경로 : https://denhaag.com/en/routes



이준 열사 기념관, 차마 그 문을 열지 못했다.

  헤이그에 있는 Mauritshuis에 갈 생각이 있긴 했지만, 정작 헤이그를 가게 된 것은 순전히 기차를 잘못 타서였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로테르담 블락(Rotterdam Blaak)역 근처에 있다는 한식당을 가고 싶어서 기차를 탔는데, 내가 탄 기차는 그 역을 거치지 않고 로테르담 중앙역을 지나 벨기에의 브뤼셀까지 가는 기차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 나머지 내린 곳이 Den Haag HS 역이었다. 
  지금 같으면 로테르담 중앙역에서 블락역까지는 먼 곳이 아니라서 걷던지, 트램을 타던지, 그것도 귀찮으면 다시 블락(Blaak) 역까지 가는 기차를 타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마음을 다잡지 못한 채 낯선 도시, 낯선 나라에서 3개월 가까이 떠돌고 있던 그 당시에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여하튼, 그래도 헤이그라는 이름은 익숙하니 일단 기차역을 빠져나와서 한 번은 보고 싶었던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작품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있는 Mauritshuis까지의 경로를 보니 대중교통으로 15분, 걸어서 19분이라고 뜨길래 주저 없이 걷는 쪽을 선택했다. 
  Den Haag HS 역 앞으로 나 있는 대로를 따라 계속 걷다 보니 뭔가 차이나타운의 느낌이 나는 가게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그 건물들 사이로 태극기가 눈에 띄었다. 건물 옆에 붙어 있는 현판은 이준 열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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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이준열사 기념관 - 출처: 구글 스트리트뷰>


  1905년, 일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황제가 그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07년에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보낸 3명의 특사를 보냈다. 그러나 일본제국과 대영제국 등의 방해와 같은 제국들인 서구의 방관으로 대한제국 대표들은 회의 참석과 발언을 거부당하고 말았다. 그 특사 중 한 분인 이준 열사가 호텔 방에서 죽음을 맞은 바로 그 호텔에 만들어진 기념관이다. 
  1620년에 지어진 전형적인 네덜란드의 3층 건물로 당시에는 호텔이었으나 이후 당구장, 술집 등으로 용도가 계속 바뀌다가 재개발로 철거될 위기에 있던 건물을, 네덜란드에 정착한 교민 부부가 매입해서 현재의 기념관이 있게 되었다고 한다.

  연 방문 인원 2천 명, 입장료 5유로(학생 3.5유로)로 꾸려가기에는 너무나 버거워 보이는 기념관.
  그 문 앞에 서서 한동안 망설이다 결국 두드릴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추스려놓은 마음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릴까 두려워서.

비넨호프(Binnenhof), 그리고 찾을 수 없었던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

  고작 20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거의 2시간은 걸어온 듯한 기분이 든 이후에야 겨우 비넨호프(Binnenhof)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은 네덜란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비넨호프(Binnenhof)는 Inner Court(안뜰)을 의미한다. 초기의 건물은 네덜란드의 백작 플로리스 IV세와 그의 아들 빌렘 II세가 사냥터를 건설하기 위해 궁전 연못(Hofvijver) 앞의 부지를 구입하고, 이후 빌렘 II세가 사냥 터를 궁전으로 넓히기로 결정하면서 건설이 시작되어 그의 아들 플로리스 V세에 의해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시대가 지나면서 그 주변을 둘러싼 형태로 건물들이 확장되었다. 

  안뜰이라는 뜻의 비넨호프(Binnenhof)도 원래 있던 저택의 안뜰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현재는 13세기에 지어진 중간에 있는 Ridderzaal(Hall of the Knights)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Ridderzaal은 아직도 네덜란드의 왕실에서 연례 행사 및 연설등의 정치적 이벤트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1446년 이후로 네덜란드 의회에서 계속해서 사용하다가 1848년 새로운 의회 건물을 건설하기 위해 철거 위기를 맞았다가 위기를 모면하고 현재까지 그 형태가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이 곳은 고종황제가 보낸 특사단이 끝내 입장을 거부당했던 1907년에 열렸던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바로 그 장소이기도 하다.

<비넨호프(Binnenhof)>


<Binnenhof(Inner Court)와 한 가운데에 있는 Ridderzaal(Hall of the Knights)>



<Ridderzaal(Hall of the Knights)>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는 어디에?

  비넨호프(Binnenhof) 바로 옆에 있다는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를 찾았으나 어디에서도 표지판을 찾을 수가 없었다. 포스팅을 쓰면서 좀 찾아보니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는 2012~2014년까지 리노베이션 중이었고, 비넨호프(Binnenhof)를 나와서 광장까지 가는 길 옆에 있던 공사중이던 그 건물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2014년에 다시 갔을 때에야 비로소 찾을 수 있었는데, 입구가 지상이 아닌 지하라니... 참 이상한 미술관이다 싶었다. 

<Mauritshuis 전면 - 입장하는 출입구는 건물 왼편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의 주요 전시 작품에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외에도 '델프트 풍경'과 'Diana and her Nymphs' 이렇게 세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이 외에도 렘브란트가 세상을 떠나던 해에 그렸던 2점의 자화상 중 터번을 두른 자화상(나머지 한 점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있다)을 전시하고 있다. 규모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립미술관(Rijksmuseum)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수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지만 네덜란드의 황금시대 떄 그려진 작품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렘브란트의 제자였다는 카렐 파브리티우스가 그린 '황금 방울새(the Goldfinch)'나 파울루스 포테르의 'the Bull' 같은 작품들도 훌륭하다.


  다른 미술관/박물관에서는 보통 티켓을 구매하고 오디오가이드를 대여하기 위해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빌리는데,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는 스마트폰용 앱을 지원한다. 앱을 설치한 후 미술관 내에서 잡히는 와이파이에 접속해서 오디오가이드로 사용할 수 있다.

다운로드 경로는 다음과 같다.


The Mauritshuis app is available in Dutch and English. The Highlight Tour is also available in German, French, Spanish, Italian, Japanese, Mandarin, Russian and Brazilian Portuguese.

Download the free Mauritshuis Tour prior to your visit from the AppStore or GooglePlay and visit the Mauritshuis with your own smartphone. 

Download the Mauritshuis Tour in the AppStore

Download the Mauritshuis Tour in GooglePlay


   일부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스마트폰용 앱들은 보통 그 박물관이 아니면 작동이 안되는 경우가 있는데, 네덜란드의 국립박물관(Rijksmuseum) 앱과 Mauritshuis Tour 앱은 굳이 미술관/박물관 안이 아니더라도 동작을 한다. 어떤식으로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면 다운받아서 실행해봐도 좋겠다. 지원하는 언어는 네덜란드어, 영어 두 가지 언어이며, 하이라이트 투어는 추가로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일본어, 중국어(만다린)로 지원된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큰 미술관/박물관 대부분이 일본어와 중국어는 지원하지만 한국어를 지원하는 미술관은 런던의 영국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파리의 루브르와 오르세 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어서 항상 영어로 달라고 했는데, 그 때 마다 뭔가 아쉽고 그랬다. 추가로 바티칸 박물관 및 성당과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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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 헤이그

  네덜란드의 수도는 암스테르담이지만, 행정수도는 네덜란드의 모든 정부 부서와 대법원, 그리고 네덜란드에 주재하는 각국 공관 그리고 국제 사법재판소가 있는 헤이그이다. 그래서인지 헤이그는 지금까지 다녔던 독일이나 스위스의 도시들과는 사이즈가 상당히 달랐다.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역에서 내려서 걷다 보면 구시가지가 나오고, 길을 헤매고 있는 것 같으면 제일 높은 교회의 첨탑을 기준으로 삼으면 되었었는데, 헤이그는 첨탑은 찾기가 힘들고 빌딩으로 빽빽한 도시였다. 처음 Den Haag HS 역에서 내려서 20여 분을 걸었는데 2시간은 걸었던 것 같은 느낌도 그래서이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를 나와서 앞을 보면 높은 빌딩과 네덜란드 정부 건물 사이에 상당히 넓은 광장이 나온다.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주역인 오라녜 공 빌렘I세(오렌지 공 윌리엄)의 동상이 서 있는 이 광장의 이름은 말 그대로 Plein(the Square)이다. 날씨만 좋았다면 광장 주변에 있는 노천카페에서 커피나 맥주 한 잔을 즐기고 싶은 곳이었다.

  분명히 더 먼 곳까지도 헤매고 다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피곤해서였는지 두 번을 다녀왔지만, 사진은 항상 비넨호프(Binnenhof)까지만 있다. 
  뭐,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봤으니 된 거지.

<the plein>

  
<the plein>



<헤이그 중앙역>



<헤이그 중앙역 근처의 빌딩들>


마치며

  유럽, 특히 북부 유럽에서의 계절은 봄-여~~름-걀-겨~~~울. 뭐 이렇게 오는 느낌이다. 처음 헤이그를 갔을 때가 11월 초, 두 번재로 갔을 때가 10월 중순이었는데 두 번 모두 날씨가 좋지 않았다.  특히나 해가 떠 있지 않고 언제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날씨라면 습도가 높아서인지 뼛속까지 아려오는 듯한 추위가 있다. 거기다가 매번 네덜란드를 갈 때는 여행의 막바지여서 체력이 바닥에 근접해서인지 좋은 기억이 없다. 
  

  좀 긴~~ 유럽 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들어간 방향으로 다시 나와야 하는 영국과 이탈리아를 시작과 끝으로 두고 그 사이에 있는 나라들을 시계 방향 혹은 반시계 방향으로 이동하는 루트를 많이들 짜는데, 이상하게 이탈리아는 끌리지 않아서 프라하나 비엔나에서 시작해서 암스테르담이나 파리에서 여행을 마무리했다. 다음 여행은 반대로 한 번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긴 하다. 그렇게 이동하면 좀 다른 계절, 다른 모습의 익숙한 도시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Fin.

  1. Favicon of http://bluesword.tistory.com BlogIcon sword 2017.11.08 13:24 신고

    앗 베르메르의 도시에 다녀오셨군요 +_+

    최근 십년 정도는 작은 미술관, 박물관의 추세가 지하부터 시작하는거더라구요...
    저도 이해할수는 없습니다만 언젠가 부터 지하부터 티켓매표와 짐보관 등을 지하에서 시작하고 1층부터 관람이 가능한 그러한 시스템으로 바뀌던데
    오래된 유럽 건물의 경우 따로 무언가 마련하기 힘들고 지하라는 공간을 놀리기 보다 그런식으로 쓰는가 보다 싶더라구요
    그리고 옛날 건물들은 지하를 잘 써서 그런지 통로가 여러개라 또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해서 신기했습니다 ^^
    저도 최근 몇년간 다녀온 유럽쪽 미술관 박물관은 거의 지하부터 시작했네요 ^^

    저도 3개월가량 여행을 한적 있는데
    그쯤 되니 살이 어마어마하게 빠지더라구요 ㅎㅎㅎ 힘들죠... 떠돈다는거...
    저도 그때의 일기를 정리해야 하는데 아직도 그냥 냅두고 있...ㅠㅠ

    • Favicon of http://puppetfox.net BlogIcon J. Hong 2017.11.09 10:49 신고

      특정 포스트만 찾아 들어오는 블로그이긴 하지만 시작한 여행기는 끝내야 할 거 같아서요. 이제 몇 도시 안남기도 했구요. 어차피 일기장이니까요. ^^;;

      그러고보니 1주일 내내 들락거렸던 루브르도 지하에 입구가 있었군요. 암스테르담의 Rijksmuseum도.... 아마도 너무 피곤해서 그랬나봅니다. -_-'

      아... 근데 저는 살은 안 빠지더군요. 힘들면 며칠씩 숙소에서 꼼짝도 안해서 그런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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