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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커피

여느 때와 같이 커피를 준비하는 아침. 원두를 갈고 물을 끓이는 동안, 주방 창 밖을 본다. 세상이 뿌옇다.

3월 말이니까, 이제 미세먼지가 시작되나 보다. 며칠 전만 해도 맑았던 하늘이 회색 장막 뒤로 숨었다. 곧 벚꽃도 피고 다른 봄꽃들도 서서히 기지개를 켤 텐데, 그 아래에서 산책을 하려던 계획이 흐려진다.

## 골드베르크 변주곡 Aria

머릿속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Aria의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화려하지 않고 그냥 조용하게, 어딘가로 가라앉는 선율. 잠 못 이루는 백작을 위해 작곡되었다던 이 곡은, 모든 것이 지나간 뒤의 상태처럼 느끼게 만든다. 반복되는 아르페지오 사이로 무언가 해결되지 않은 채 떠도는 감정들, 위로인지 체념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 경계에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어느 순간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갔다. 오는 봄을 막지 못한 채 지는 동백처럼, 해결되지 않은 채 반복되는 선율처럼, 마음이 또 한 번 무너진다.

 

## 다시 현실로

창밖의 뿌연 풍경과 머릿속의 선율이 겹친다. 

벚꽃은 지금 이 순간에도 피고 있을 것이다. 매화가 그랬듯이, 개나리가 그렇듯이. 누군가 보든 말든, 날씨가 맑든 뿌옇든 제 할 일을 하듯이. 그런데 그것을 보러 가려면 문을 열어야 한다.

현관을 나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물 끓는 소리 들린다. 상념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와 커피를 내려야 할 시간, 손이 기억하는 대로 움직인다. 그라인더, 바스켓 채우기, 탬핑, 조립, 물 붓기, 추출.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이 루틴만큼은.

뿌연 세상 너머로 봄은 오고 있다. Aria의 선율처럼 느리게, 담담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로,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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