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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설날, 매화

  설날, 차례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얼핏 매화가 핀 것 같은 느낌에 다시 한번 살펴보니 군데군데 매화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매화는 2월 말 즈음에 피기 시작해서 3월 초에 만개했던 것 같은데, 이번 겨울은 따뜻해서인지 예년보다 빨리 꽃이 피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설 연휴 마지막 날, 몸이 너무 무겁습니다. 가만히 누워서 쉬고 싶지만 그랬다간 우울함의 심연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의지가 있을 때 나가지 않으면 나중엔 현관 밖을 나서기까지 몸도 마음도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라 억지로 몸을 일으켰습니다.

몇 년 전 매화가 한창일 때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꺼내 봅니다. 사진 속 매화나무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하나씩 떠올렸습니다. 첫 번째 장소는 근처 아파트 단지 입구의 작은 화단. 기억을 더듬어 그곳으로 갔습니다. 예전 사진 속 그 자리에 나무가 없습니다. 잘린 그루터기만 남아 있습니다.

  두 번째 장소는 근처 공원. 몇 년째 머물고 있는 이 소도시엔 작은 공원들은 많지만, 조경은 소나무 몇 그루 심어둔 게 대부분입니다. 기억 속 매화나무가 있던 자리로 가보니 말라죽은 나무만 서 있습니다. 가지는 앙상하고 껍질은 갈라져 있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장소도 비슷했습니다. 걸으면서 소도시의 조경 수준이 수도권과는 다르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그래도 꽃은 핀다

  그래도 오랜만에 운동 삼아 매화가 있을 만한 곳을 훑어 다니다 보니, 언덕 위 공원 한 켠에서 한 그루를 발견했습니다. 누가 심었는지, 언제 심었는지도 모를 나무. 가까이 다가가 봅니다. 

꽃이 필 준비를 마친 꽃망울들이 가지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연한 분홍빛이 비치는 봉오리 사이로 이미 핀 꽃이 하나, 둘 보입니다. 꽃잎은 얇고 투명해서 오후의 햇빛이 비치면 가장자리가 반짝입니다. 바람이 불면 꽃망울들이 미세하게 흔들립니다. 

 

 

 

 

  여전히 봄은 요원하고 아직도 바람은 차갑게 느껴집니다만, 그래도 꽃은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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