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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시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소도시의 밤은 서울의 그것보다 훨씬 일찍 찾아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안 좋던 허리가 다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지 몇 주째, 감기 몸살까지 겹친 아침은 유난히 몸을 무겁게 끌어내립니다. 통증 그 자체보다도, 얼기설기 엮어두었던 마음의 상처가 다시 곪아버린 것 같아 현관 밖으로 발을 내딛지 못합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답답함에 베란다에 섭니다. 바라본 풍경은 어둡기만 합니다. 가로등 사이로 흩어지는 불빛을 보다가, 서울에서 흔하디흔하게 보던 빌딩 숲의 삭막함이 문득 그리워집니다. 적어도 거기서는 고요가 이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낯선 고요 속에서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도는 감각.

그 순간, 역설적이게도 귓가에는 익스트림(Extreme)의 <Hole Hearted>가 흐르고 있습니다. 경쾌한 12현 기타 인트로, 몸 상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밝은 리듬.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는 묘하게도 지금의 상태를 정확히 가리킵니다.

"There's a hole in my heart that can only be filled by you
And this hole in my heart can't be filled with the things I do"

 

 

내 마음에는 오직 당신만이 채울 수 있는 구멍이 있다고, 내가 하는 일들로는 채워질 수 없다고 노래는 말합니다. 그런데 그 'you'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Hole Hearted. 구멍난 마음.

제목이 Wholehearted(진심 어린)처럼 들립니다. 어쩌면 의도된 말장난일 것입니다. 온전하다고 믿고 싶지만 실은 구멍투성이인 마음. 진심을 다하려 해도 이미 새어나가 버리는 무언가.

 

구멍난 채로, 그냥 그렇게

사람은 채우려다 실패한 흔적이 쌓이고 쌓이면, 더 이상 채우려 하지 않게 됩니다. 그 대신 비어 있는 채로 균형을 잡는 법을 먼저 익히게 됩니다. 무너질 것 같지만 무너지지 않는, 애초에 완전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버팁니다. 

구멍난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메워질 거라 믿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저절로 메워지는 구멍 같은 건 없습니다. 이제 와서 그 오래된 구멍을 메우겠다는 말도 조금 늦은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무언가를 채우기에는 이미 너무 오래 비어 있었고, 그 사이 비어 있는 상태 자체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그것이 성숙인지 체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비어 있으면 비어 있는 대로, 섞이지 않으면 섞이지 않는 대로 그.저. 잠.시. 보.류.

밤은 더 어두워지고, 기타 소리는 여전히 밝고 경쾌하게 흘러갑니다. 여전히 Hole-Hearted인 채로 어둠이 내리는 풍경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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