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전주곡-1


  쇼팽의 전주곡 Op.28  No.15 '빗방울 전주곡'

  아침부터 비가 내립니다. 요 몇 년간 장마라고 해도 비가 잠깐 오다가 마는 '마른장마'였는데, 올해는 제법 장마 같은 비가 내립니다.

  빗방울 소리를 듣고 있다 보니 '빗방울 전주곡'이라는 별명이 붙은 쇼팽의 전주곡(Prelude Op.28, No.15)이 떠올랐습니다.


  전주곡(前奏曲)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는 어떤 곡의 도입부 역할을 하는 짧은 형식의 악곡이었습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전주곡을 모음곡이나 푸가 등과 같이 엮어서 쓰는 경우가 많았으나, 낭만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비교적 짧은 형식의 독립된 악곡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렇게 독립된 악곡으로 자리 잡는 데는 쇼팽이 큰 역할을 하는데, 기존의 단순히 '연습곡'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에튀드(Etude)에 예술성을 부여해 하나의 연주곡으로 만든 것처럼 전주곡(Prelude)도 단순한 도입곡이 아니라 완성된, 그 자체로 독립된 음악으로 만들었습니다.

  쇼팽은 Op.28에 모음곡 형식으로 되어 있는 24개의 곡, Op.45의 올림 다단조 한 곡과 작품번호가 없는 내림 가장조 한 곡, 이렇게 총 26개의 전주곡을 작곡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빗방울 전주곡'은 쇼팽이 작곡한 24개의 전주곡이 들어 있는 Op.28 중 15번째 곡입니다. 클라우디오 아라우(Claudio Arrau)의 연주도 첨부합니다.


   '빗방울 전주곡'은 곡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들리는 A# 음이 마치 빗방울 소리와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곡입니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쇼팽은 폐결핵을 앓고 있었는데, 쇼팽의 운명의 여인이었던 6살 연상의 조르주 상드와 요양차 머물렀던 스페인의 마요르카섬에서 작곡한 곡입니다. 

  쇼팽이 죽고 6년 뒤에 조르주 상드는 회고록 <Histoire de ma vie(Story of My Life)>를 출판하는데, 그 회고록에 이 '빗방울 전주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Nous l'avions laissé bien portant ce jour-là, Maurice et moi, pour aller à Palma acheter des objets nécessaires à notre campement. La pluie était venue, les torrents avaient débordé: nous avions fait trois lieues en six heures pour revenir au milieu de l'inondation, et nous arrivions en pleine nuit, sans chaussures, abandonnés de notre voiturin, à travers des dangers inouïs. Nous nous hâtions en vue de l'inquiétude de notre malade. Elle avait été vive, en effet, mais elle s'était comme figée en une sorte de désespérance tranquille, et il jouait son admirable prélude en pleurant. En nous voyant entrer, il se leva en jetant un grand cri, puis il nous dit, d'un air égaré et d'un ton étrange: «Ah! je le savais bien, que vous étiez morts!»


  나는 그의 상태가 좀 나아지는 것을 보고 아들 모리스와 함께 팔마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외출했다. 그런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심해지면서 갑자기 불어난 급류가 넘쳐 흘렀다.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길을 돌아서 6시간이 걸려 한밤중에서야 집에 도착했다. 집에 혼자 있는 그가 걱정되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전주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우리가 집에 들어서자 그는 일어나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아, 나는 당신이 죽었다고 생각했소!"

. . . . 

조르주 상드 <Histoire de ma vie(Story of My Life)> 中 에서


  당시 쇼팽은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간 상드와 모리스가 밤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자 세상에서 버려져 혼자 남을까 봐 정말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 절박한 심정을 1:45 초 근처에서 격정적으로 변하는 저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래 첨부한 손열음의 연주에서는 그 절박한 심정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장마가 시작되더니 태풍까지 올라온다는 소식입니다. 비 피해 없이 행복한 한 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1. Favicon of http://deborah.tistory.com BlogIcon Deborah 2018.07.02 20:13 신고

    한국은 장마철이군요. 비와 너무나 잘 어울려진 선곡이네요.
    쇼팽의 여인들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다시 접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그렇군요. 절망의 그 순간에 작곡된 곡이라서 그런지 더 애착이 가는지도 모르겠네요.
    마치 빗방울이 그의 마음을 따라서 함께 흐느끼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멋진 곡과 함께 배경설명도 잘 읽었네요.

    • Favicon of https://puppetfox.net BlogIcon J. Hong 2018.07.02 22:22 신고

      어떤 곡이든지 사연을 알고 곡을 들으면 더 잘 와닿는 것 같습니다.
      데보라님 덕분에 저도 Pop이나 Rock 쪽에 얽힌 사연을 하나 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