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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Triumphforte or Triumphal Arch

  개선문은 원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을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으나, 로마 제국 이후에는 국왕의 권위와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인식되어 근대 유럽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개선문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개선문이라고 하면 나폴레옹이 건립한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 Arc de Triomphe이 제일 먼저 생각나지만, 유럽의 다른 도시에도 개선문이 남아 있는 도시들이 꽤 많습니다.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이라던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앞에 있는 카루젤 개선문, 이탈리아 피렌체의 로렌 가문 개선문 등등. 그중에서도 오늘 포스팅하는 인스브루크 Innsbruck에 있는 개선문 Triumphforte은 조금 독특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건축물입니다.


인스브루크의 개선문 Triumphforte in Innsbruck

  인스브루크의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남쪽 끝, 구시가의 시작점에 있는 인스브루크의 개선문은 유럽을 지배하던 가문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 대제가 1765년에 아들 레오폴트 대공과 스페인 왕녀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인스브루크에 건설하기 시작한 건축물입니다.

triumphforte-2<개선문의 남쪽면>


  처음에 건설하기 시작한 개선문의 남쪽 면에는 레오폴트 대공과 스페인 왕녀 마리아 루이자의 초상화와 결혼을 축하하는 부조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건설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8월에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인 프란츠 슈테판 공이 사망하면서, 북쪽 면은 프란츠 슈테판 공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를 담게 되었습니다.

triumphforte-3<개선문의 북쪽면>


  인스브루크 구시가 쪽에서 개선문을 보게 되는 쪽이 개선문의 북쪽 면인데, 프란츠 공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의 부조가 개선문의 중앙에 조각되어 있고, 양옆으로는 프란츠 공과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아들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하기 시작해서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끝난 인스브루크의 개선문, 혹시라도 한 번쯤 인스브루크에 가실 일이 있으시다면 개선문 양편에 조각된 부조를 천천히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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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luesword.tistory.com BlogIcon sword 2018.10.15 17:30 신고

    으아니... 이런 의미들이...
    두번째 사진 너무 멋져서 한참 봤어요 ^^

    • Favicon of https://puppetfox.net BlogIcon J. Hong 2018.10.16 20:58 신고

      인스브루크가 작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동네입니다. 지금까지 두번 갔었는데, 각각 3~4일 정도 머물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광장에 앉아서 노닥거려도 마음이 그렇게 편할수가 없더군요. ^^

  2. Favicon of https://jujuen.tistory.com BlogIcon 글쓰는 엔지니어 2018.10.15 19:10 신고

    의미를 듣고 보니 또 새롭네요 ㅎㅎㅎㅎ 잘보고가요^^

  3. Favicon of https://www.mallmoney.co.kr/ BlogIcon 소액결제 현금화 2018.10.16 10:16 신고

    잘보고 가요^^

  4. Favicon of http://deborah.tistory.com BlogIcon Deborah 2018.10.17 21:47 신고

    남편을 애도하는 개선문의 조각과 얽혀진 사연을 들어보니 새롭게 보게 되네요.


네덜란드를 여행하는 또 다른 방법, OV-chipkaart

  여행을 다니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전국에서 사용가능한 한국의 티머니같은 시스템이 구축된 나라는 의외로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특정 지역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라도 있으면 다행이고, 유럽 지역은 아직도 종이로 된 패스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국호환 교통카드가 있는 나라입니다. 신용카드 크기의 OV-chipkaart라는 교통카드로 네덜란드 내의 버스, 지하철, 트램 뿐 아니라 네덜란드 내의 간선열차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카드입니다.


OV-chipkaart에는 무기명카드와 사진이 부착된 개인카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개인카드는 네덜란드 내에 거주지 주소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여행객들이 사용하기 편리한 것은 무기명카드를 이용하게 됩니다.

  무기명 카드는 기차역의 서비스 창구나 아래와 같이 생긴 노란색 자동판매기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카드값이 7.5유로(환불안됨)이며, 충전할 금액을 추가로 입력하면 합산해서 계산이 됩니다. 암스테르담에 며칠만 있을 거라면 상관없겠지만, 네덜란드의 지방 도시들을 돌아보고 싶다면 구매하는 편이 편리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서 추천합니다.


  교통카드는 트램이나 버스의 경우에는 버스 안에 있지만 기차의 경우는 별도로 개찰구가 없기 때문에 아래 사진과 같이 생긴 기계에 승차와 하차시에 반드시 태그를 해야 합니다. 


네덜란드를 여행하면서 로테르담에서 암스테르담, 헤이그, 도르트레흐트 등을 돌아다닐 때 검표원을 한 번은 본 기억이 있기 때문에 네덜란드 기차의 경우 Inter City같은 빠른 기차의 경우 검표원이 상당히 자주 돌아다니기 때문에 무임탑승은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버스나 트램의 경우 차 안에 아래 사진과 같은 모양의 기계에 카드를 갖다 대면 됩니다. 우리나라의 교통카드 처럼 타고 내릴 때 모두 찍어야 합니다.


  교통비가 할인이 된다거나 하는 장점은 없지만 매번 티켓을 구매하거나, 암스테르담의 GVB 1일권, 3일권의 경우처럼 시간 계산을 해서 사용한다거나 하는 불편함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편리한 카드라고 생각됩니다.

  1. Favicon of https://164regina.tistory.com BlogIcon 욜로리아 2018.09.12 23:43 신고

    네덜란드 대중교통카드도 편리하게 되어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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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 고종의 잠저(潛邸)

  안국역 4번 출구에서 종로쪽으로 , 혹은 종로3가에서 낙원상가를 지나 북촌 쪽으로 걷다 보면 운현초등학교와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옆에 흥선대원군의 사저(私邸)이며 고종이 즉위 전 12세까지 살았던 잠저(潛邸)였던 운현궁이 나옵니다. 운현(雲峴), 우리말로 풀이하면 '구름재'가 되는 이 이름은 기상을 관측하던 관청인 관상감의 별명인 서운관(書雲觀)이 있던 고개라는 지명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운현궁은 처음에는 '흥선군 집' 혹은 '대원군 궁'으로 부르다가 고종 즉위 이후 고종실록에 '운현궁과 금위영 사이에 특별히 문을 세우라'라고 하는 기록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운현궁은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양관, 영로당, 아재당, 육사당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과 경비 및 관리 건물인 수직사만 운현궁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노안당(老安堂)

  운현궁의 정문을 들어서면 안내소와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건물인 수직사가 있고, 그 옆으로 솟을대문 2개가 보입니다. 하나는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으로 가는 대문이고, 나머지 하나는 안채인 노락당(老樂堂)과 이로당(二老堂)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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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안당으로 통하는 솟을대문 옆의 네모난 돌은 흥선대원군이 타고 다니던 바퀴 달린 가마에서 내릴 때 사용하던 노둣돌이라고 부르는 하마석(下馬石)입니다.


  운현궁의 사랑채였던 노안당(老安堂)은 고종이 즉위한 직후인 1864년에 건립한 건물로, 논어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인 자로의 대화에서 나오는 "노자老者를 안지安之하며"라는 글귀에서 노안당이라는 이름을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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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路曰 願聞子之志하나이다

子曰 老者를 安之하며 朋友를 信之하며 小者를 懷之니라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의 뜻을 듣고자 합니다"라고 청하자,

공자는 "노인을 편안하게 해 주고, 친구를 믿어주며, 젊은이를 감싸주겠다"고 답하였다. 

  노안당은 아들이 왕이 됨으로써 그 노후를 편안하게 살게 되어서 흡족하다는 의미로 해석을 합니다. 흥선대원군이 주로 거처했던 곳으로 고종 즉위 후 주요 개혁정책이 논의되었던 건물이기도 합니다. 노안당의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자를 집자(集字)해서 제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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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락당(老樂堂), 하늘과의 거리가 한 자 다섯 치(去天五尺)

  노안당을 뒤편의 중문을 지나면 나오는 노락당은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로 주로 결혼, 회갑 등 큰 가족 행사가 있을 때 주로 이용했던 안채 건물로, 1864년 노안당과 함께 건립된 건물입니다. 1866년 당시 15세의 고종과 16세인 명성황후가 가례를 올린 곳도 바로 이곳 노락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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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의 거리가 한 자 다섯 치(去天五尺), 이 내용은 흥선대원군이 머물렀던 운현궁의 건물 중 하나인 노락당(老樂堂)에 걸려 있던 현판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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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락당기(老樂堂記),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노락당은 명성황후가 삼간택이 끝난 후 왕비 수업을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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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락당 뒤쪽에 보이는 서양식 건물은 운현궁의 부속건물이었던 양관으로 일제가 경술국치 조약에 앞서 왕족들을 회유하기 위해 만들어준 건물입니다.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의 본관으로 사용하다가 최근에는 보존을 위해 비워둔 상태라고 합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역할인 공유와 저승사자 역할인 이동욱이 같이 살던 그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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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락당을 나서면 이로당으로 가는 길의 반대편에 솟을대문이 있는데, 이 솟을대문은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에 해당하는 노락당과 이로당을 위한 출입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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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당 가는 길>


이로당(二老堂)

  노락당과 더불어 운현궁의 안채 역할을 하던 건물입니다. 노안당과 노락당보다 늦은 1869년(고종 6년)에 완공되었으며, 마당에서 볼때는 ㄱ자 형태지만 바깥 남자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안쪽으로 ㅁ자 형 구조에 가운데는 작은 마당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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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현궁의 안채로 노락당이 있었지만 명성황후가 운현궁에 머물 때 노락당을 거처로 사용하면서 운현궁의 안주인이었던 부대부인이 머물 안채가 필요해서 추가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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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로당(二老堂)의 편액도 노안당과 마찬가지로 추사의 글씨를 집자하여 모각하였습니다. 二老는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 민씨를 지칭하는 것으로 '두 노인 二老을 위한 집'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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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현궁을 한 바퀴 돌아도 고종이 12살까지 자랐다는 잠저(潛邸)에 대한 안내는 찾아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지금 남아 있는 운현궁 부지가 아닌 일본 문화원 옆의 래미안갤러리 자리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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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청 마루에 잠시 걸터 앉아서 쉴 수도 있어서 주말에 근처에 볼 일이 있다면 한 번 들러볼만 한 곳입니다.

  너무 덥지 않은 주말이라면 한 번 나들이 삼아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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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운니동 114-10 | 운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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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deborah.tistory.com BlogIcon Deborah 2018.07.07 19:08 신고


    멋진곳을 다녀 오셨군요. 날씨가 무더운 여름철에는 움직이는것 조차 노동이네요.
    여긴 날씨가 34도가 넘었네요. 옛 건축물은 언제봐도 멋이 담겨져 있군요.

    • Favicon of https://puppetfox.net BlogIcon J. Hong 2018.07.09 22:49 신고

      서울도 32도가 넘어가는 날씨가 한동안 계속되다가 장마가 오면서 좀 누그러진 편입니다.
      운현궁은 갈 때 마다 조선말기의 격변기가 생각나서 기분이 좀 묘할때가 많습니다. ^^

경춘선 숲길 공원

  6호선 화랑대역에서 태강릉(泰康陵) 쪽으로 가다 보면 중간에 육군사관학교가 있고, 그 앞에 예전 경춘선의 서울 쪽 마지막 간이역인 화랑대역이 있습니다. 2010년 이후 경춘선 노선이 상봉역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덤프트럭의 주차장으로만 사용되던 공터였다가 작년에 간간이 지나다닐 때 증기관차가 서 있는 것을 봤는데, 이번에 보니 공원으로 탈바꿈했네요.

  6호선 화랑대역 쪽에서 가다 보면 공원 입구임을 알리는 안내판과 증기기관차가 서 있습니다.

  경춘선 숲길 공원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 있는 내용입니다.

경춘선은 서울과 춘천을 연결하는 철길로 서울 '경(京)'에 춘천의 '춘(春)'을 더하여 이름으로 삼았다. 당시 경인선 등 많은 철도가 일제의 침탈용으로 부설된 반면 경춘선은 우리 스스로 민족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건설한 특별한 철도이다. 춘천 상인이 중심이 된 번영회에서 1926년 2월 '경춘철도 기성회'를 조직하고 4년간 공사를 벌여 1939년 완공했다. 경춘철도주식회사에서 운영하다 국철로 편입되었다. 서울 시가지가 확장됨에 따라 출발역인 성동역(현재의 제기동역 근처)에서 성북역 구간이 철거됐다. 2010년 경춘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성북역(현 광운대역)~갈매역 구간 열차 운행이 중단되고 청량리역과 상봉역에서 출발하는 경춘선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2010년부터 쓰임이 다한 경춘철교~담터마을(서울 시계) 구간 6.3km에 경춘선 숲길 공원 조성 공사에 들어갔다.

  이곳에는 옛 경춘선 중 서울에 위치한 마지막 간이역인 (구)화랑대역이 있다. (구)화랑대역사는 근대 건축양식의 목조건축물로 등록문화재 제3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기차역사 용도로 지어져 개통 당시에는 '태릉역'으로 불리다 1958년 육군사관학교가 이전해 온 후 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경춘선이 70년간 근대산업 문화유산의 현장을 간직하여 많은 사람에게 옛 기억과 향수를 느끼게 해주었고, 서울에서 철길 원형이 가장 길게 남아 있는 특성을 설계 모티브로 삼아 철길 원형을 보존하고 정원과 산책로, 지역주민의 문화공간을 조성하여 2017년 개방했다.


  안내판을 읽고 나면 처음에 보이는 것이 협궤열차입니다. 철로의 폭이 일반 철로의 143.5cm보다 절반 정도인 76.2cm라서 협궤철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마지막 협궤철도가 다닌 노선은 1995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없어진 수원-인천 노선이었습니다.

  협궤열차를 지나니 예전 기차역의 철로와 트램이라고 하는 노면전차 2개가 보입니다. 그런데 오른쪽은 프라하에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

  일단 가까이에 있는 빨간색 노면전차를 보니 역시 예상대로 체코의 프라하 여행에서 자주 타고 다니던 그 트램입니다.

  창문에 보니 발송지와 수신지의 주소가 나와 있습니다. 프라하에서 노원구청으로 보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경춘선 숲길 공원 조성을 위해 노원구청에서 특별히 주문한 노면전차인 것 같습니다.


  프라하에서 온 노면전차 뒤로 이번에는 일본에서 온 것 같은 전차가 보입니다. 목적지에 '시운전'이라고 쓰여 있네요.

  이 노면전차는 1960년대까지 서울에서 운행되던 전차와 같은 모델을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저기 도색이 벗겨져서 흉한데, 아마도 색을 다시 칠하고 내부도 보수하고 정식으로 공개할 것 같습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증기기관차가 한 대 더 있습니다. 미카 5-56 이라고 써 있는 이 열차는 1952년 일본에서 도입되어 서울-부산을 운행하던 화물용 증기기관차로 1960년대에 디젤기관차가 나오기 전까지 운행했다고 합니다. 운행 종료 후 어린이대공원에 전시되어 있던 것을 이번에 경춘선 숲길 공원으로 옮겨왔다고 하네요.

  전시된 기차를 대충 둘러보고 나니 "화랑대역"이라는 현판이 달린 간이역 건물이 보입니다.

  화랑대역은 서울시 등록문화재 300호로 지정된 건물인데, 건립 당시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어서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합니다. 1939년 "태릉역"으로 시작해서 육군사관학교가 이전해 오면서 1958년에 지금의 "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내부는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온 김에 태강릉까지 갈까 하다가 비도 조금씩 내리는 것 같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공원을 나와서 돌아가기로 합니다.

  나오다가 보니 한쪽 구석에 벤치라고 하기엔 너무 낡은 무언가가 하나 있습니다.

  다가가서 보니 대한제국 시절에 최초로 도입된 황실 전차라고 합니다. 

  사방이 개방된 형태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서 본 것 같은 모습입니다. 이 전차도 역시 주변 정리와 보수를 거친 후 개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경춘선 숲길 공원은 주변에 주차장이 없어서 대중교통으로 화랑대역에서 내려서 걸어가거나, 아니면 태강릉을 방문하시면서 그쪽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잠시 쉬었다 가는 정도로 들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얼른 꽃샘추위가 끝나고 날이 좀 풀리면서 꽃이 피기 시작하면 한 번 더 다녀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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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공릉동 29-61 | 화랑대역 (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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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spdotnet.tistory.com BlogIcon 재우니 2018.03.23 11:30 신고

    서울선책하는데 좋네요.. 한번 가봐야겠어여~

    • Favicon of https://puppetfox.net BlogIcon J. Hong 2018.03.23 19:21 신고

      산책하기 좋게 정비가 잘되어 있더군요. 사진찍는 분들도 꽤 많아졌구요.
      시간내서 꼭 한번 가보세요. ^^


Zuid Holland주의 소도시, 도르드레흐트(Dordrecht)

  사실 도르드레흐트(Dordrecht)는 딱히 뭔가 볼만한 거리가 있는 도시는 아닙니다. 암스테르담이나 로테르담에서 벨기에로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만나는 작은 역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거의 찾지 않는 작은 소도시인 도르드레흐트(Dordrecht)는 1220년에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도시 특권(Town privileges)을 획득한 가장 오래된 도시입니다. 도시 특권은 자체적으로 이웃도시들과 교역을 하고, 길드를 설치하거나 화폐를 찍을 수도 있었으며, 도시의 재판권등을 자체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 지금으로 치면 자치구의 성격을 지니는 권리였습니다. 독일에서 대표적인 도시 특권을 획득한 도시는 뒤셀도르프가 있습니다. 뒤셀도르프 구시가의 광장 한쪽에 아직도 그 기념물이 남아 있을 정도로 자랑스러운 권리였나 봅니다.

  지금은 무역의 중심이 로테르담으로 넘어가면서 쇠락한 옛도시의 흔적만 남아 있지만, 네덜란드에서 1주일간 로테르담에서 숙소를 잡아서 머물던 때, 뜬금없이 이 도르드레흐트가 가보고 싶었습니다. 아마 어딘가의 블로그에서 읽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무역도시였다는 점과 로테르담 중앙역에서 30분이면 갈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도르드레흐트 관광 정보

  도르드레흐트 지도는 도르드레흐트 관광사무소인 VVV에서 얻을 수 있거나, VVV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관광안내서에 포함되어 있는데, 찾기가 쉽지 않아서 그냥 첨부합니다.

도르드레흐트 VVV 링크 : http://www.vvvdordrecht.nl/content/content.asp?menu=0023_000062_000000_000000

도르드레흐트 관광안내서(영문) :  ENGELS_2018_VVV_Dordrecht_Digitaal.pdf

아래 지도는 관광안내서의 30p에 나오는 지도입니다. 

  대표적으로 볼만한 것은 Grote Kerk(The Great Church), Groothoofd(Oude Maas, Beneden Merwede, Noord converge의 세 개의 강이 만나는 곳), Grote Kerk와 Groothoofd 사이에 있는 옛 항구,  Het Hof of the Netherlands(네덜란드 역사 박물관), 도르드레흐트의 황금시대를 보여주는 Huis van Gijn 등이 있습니다만.... 저는 그런 거 모르고 다녀왔습니다.


도르드레흐트 구경하기

  제가 다녀올 때는 위에 첨부한 관광지도도, 관광안내서도 구할 수 없어서 그냥 구글 지도를 보고 대충 도르드레흐트 중앙역에서 내려서 구시가를 찾아 걸어갔습니다. 
  10월의 네덜란드는 변덕이 심해서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는 날씨지만 일단 중앙역에서 내리니 파란하늘이 보이길래 설마 비가 오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일단 무작정 구시가를 향해 걷습니다.

  역 앞의 빌딩들을 지나 운하를 건너가니 여기부터 구시가지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고풍스러운 2~3층 집들이 반겨줍니다. 쇼핑몰 거리 한쪽에  네덜란드의 슈퍼마켓 브랜드인 Albert Heijn 이 보이길래 잠깐 들러 음료수와 군것질거리를 사고 중앙 광장이라고 볼 수 있는 Statenplein까지 어찌어찌해서 도착합니다. 이 때가 11시 30분이 넘었는데, 아직 도시는 조용합니다. 하늘도 구름이 살짝 더 많아지는 게 괜스레 불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설마....

  어쨌든 네덜란드 전통양식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꼭 미니어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온이 쌀쌀한데, 광장 반대편의 쇼핑몰 건물 앞에는 분수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이미 관광안내소인 VVV는 못 찾고 지나친 것 같고, 그냥 주변을 좀 더 둘러보기로 합니다.



  골목을 지나 운하를 건너는데 하늘에 구름이 점점 많아집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De Witt 형제의 동상이 나옵니다.

  드 비트(De Witt) 형제는 17세기의 수학자이면서 정치인이었는데, 네덜란드의 재정 재건을 추진하고 해군력을 증강하는 등의 많은 공로를 세웠지만 완전한 공화제를 주장하는 것이 실질적인 왕가였던 오라녜 가문에 대한 반역이라는 혐의를 받아 감옥에 갇혔다가 감옥을 습격한 오라녜 가문을 지지하는 시민들에 의해 살해된 비극의 인물입니다. 국가의 기반을 굳건히 다지는 데 이용되고 이후 필요 없어지면서 제거된 네덜란드판 토사구팽 사건인 셈입니다.

  다시 길을 걷는데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는게 심상치 않습니다.

  역시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우산도 안 챙겨왔는데....

  저 멀리 Grote Kerk가 보이길래 일단 거기로 비를 피하러 가기로 합니다만.... 도착하니 문이 잠겨 있습니다. 정문도, 쪽문도 모두 잠겨 있습니다.

  비가 무슨... 한여름 장맛비가 내리는 것처럼 쏟아집니다. 할 수 없이 어느 집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서 있습니다. 15분쯤 지나니 비가 그칩니다. 그사이에 온몸은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서러운 기분까지 들어서 그냥 숙소로 돌아가서 쉬기로 합니다. 

  서둘러 기차역으로 돌아가는데 하늘은 구름이 걷히고 있네요.

  이번 도르드레흐트 여행은 망했습니다. 다음에 또 가게 될지는 잘.....

*이 포스트는 예전에 다녀온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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