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릇 혹은 석산(石蒜)

2025. 11. 2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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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5년

상사화가 아니라 석산(石蒜), 꽃무릇입니다

  9월 중순쯤 공원을 빨갛게 물들이는 꽃이 있습니다. 석산(石蒜), 돌마늘, 꽃무릇이라고 불리는 꽃이 이 꽃입니다. 잎과 꽃이 같이 피지 않는 꽃이기에 상사화라고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상사화는 여름에 피는 연보라, 노랑, 색의 꽃이고, 꽃무릇은 가을에 피는 붉은색의 꽃입니다. 피는 순서도 석산은 꽃->입 순서로 피지만, 상사화는 잎->꽃 순서로 핍니다만, 둘 다 잎과 꽃이 함께 있지 못하는 성질 때문인지 오인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상사화(相思花)란 이름만 가지고 본다면 꽃이 필 때 잎이 없고, 잎이 있을 때 꽃이 피지 않으므로 꽃과 잎이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끝내 만나지 못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긴 합니다.

  꽃무릇의 원산지는 중국인데, 꽃 모양이 특이한 만큼 내려오는 설화가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의 폭군 강왕은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영토를 확장하는 등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세를 떨쳤다. 송강왕은 매일 밤마다 수많은 미녀들과 열락에 빠져 간언을 하는 충신들을 모조리 사형에 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사인(舍人)인 한빙(韓憑)의 아내 하(河)씨의 아름다움을 듣고 그녀에게 반해 강제로 후궁으로 취했다. 하씨는 놀라며 눈물까지 흘리며 거부했지만 송강왕은 힘으로 그녀를 취했고, 이를 들은 한빙도 경악하며 피눈물로 읍소했지만 왕은 '네 아내가 스스로 선택한 걸 어쩌리'라는 얼굴색도 바꾸지 않은 거짓말을 하며 외면했다. 절망한 한빙이 왕을 원망하자 그에게 죄를 씌워 멀리 추방했고 한빙은 자결했다. 한편 남편을 그리워하던 하씨 역시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성벽 아래로 몸을 던져 자결했다. 이 소식에 송강왕은 길길이 날뛰며 분노하는데, 죽은 그녀의 소맷자락에는 '왕께서는 저와 사는 것이 행복이겠지만 저는 죽음이 행복입니다. 시체를 부디 남편과 함께 묻어주십시오.'라는 유언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못된 송강왕은 그녀의 간절한 유언을 찢어버린 뒤 그들을 합장하지 않고 오히려 죽어서도 절대 만나지 못하도록 두 무덤을 멀리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악행을 보던 하늘이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며 둘을 다시 만나게 하였다. 몇 년 뒤, 두 무덤 위에서 나무가 자라 큰 나무가 되더니 뿌리와 가지가 뻗어 서로 뒤엉켜 연리지가 되었고 한 쌍의 원앙이 서로 목을 비비며 울었다. 그 후 연리지를 상사수(相思樹)라 하였다. 이 상사수에서 핀 꽃이 바로 석산이라고 한다.

  선명한 붉은색에 특이한 모양의 꽃무릇은 유독성 식물인데, 그 독성 때문에 쥐, 두더지, 벌레들도 도망칠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죽음과 관련 있는 명칭이 많습니다. 새빨간 붉은 빛과 먹으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독성 등의 성질 때문인지 사인화(死人花), 장례화(葬礼花), 유령화(幽霊花), 지옥화, 기아화(棄兒花), 만주사화, 저승화, 산두초, 산오독, 노아산, 야산, 리코리스, 면도날꽃, 여우꽃(狐草), 붉은가재무릇 등등 갖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꽃무릇을 피안화(彼岸花)라고 부르는데, 가을에 있는 추분을 기준으로 한 7일간을 말하는 피안에서 유래했지만 지금은 불교에서 말하는 피안, 즉 저승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가을은 이미 저물고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지만, 오랜만에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전에 찍어 둔 사진이 아까워서 늦게나마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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