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푸른 저녁
2018. 3. 23.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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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노을, 팔당호>
이른 저녁을 마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하나 집어듭니다.
오늘도 기형도 시인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입니다. 시인의 시 중에 "어느 푸른 저녁"이라는 제목의 시 한구절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
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
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
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
어느 투명한 저녁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든 신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 기형도 시집, [입속의 검은 잎] "어느 푸른 저녁"중에서, 문학과 지성사 1989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다 보니 문득 박노해 시인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 나오는 "우리 함께 걷고 있다"의 한 구절도 생각이 납니다.
오늘도 길을 걷는 우리는
알 수 없는 먼 곳에서 와서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돌아간다
-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우리 함께 걷고 있다" 중에서, 느린걸음 2010
뉴스에서는 10년을 넘게 기다리던 소식을 전해 주고 있는 봄날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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