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땅속에서 내 몸을 잡아끄는 것 같네요. 깊이깊이 꺼져버릴 것 같아요."

          -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중에서, p.59

  쳇 베이커(Chet Baker)의 마지막 2장짜리 실황 앨범 the Last Great Concert의 첫번째 CD에 실려 있는 My Funny Valentine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이 딱 김영하 작가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나오는 저 대사였습니다. 

  the Last Great Concert 앨범은 그가 죽기 2주 전, 1988년 4월 28일에 독일의 하노버에서 있었던 콘서트 실황 음반입니다. 쳇 베이커는 이 공연을 마치고 2주 후 암스테르담의 싸구려 호텔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 잠시 언급을 합니다.

 "쳇 베이커라는 재즈 뮤지션이죠, 별볼일없는 인생을 살았지요. 이름을 날린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재즈사에 남을 만한 인물은 아니었죠.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트럼펫 연주가 탁월했던 사람도 못 됐죠. 60년대에는 오로지 마약 살 돈을 구하기 위해 연주를 했다지요"

… 

"이 앨범은 라이브지요. 그의 마지막 콘서트를 담은 건데 이 콘서트 이 주일 후에 그는 자신이 묵던 호텔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해요."

… 

"암스테르담 경찰은 사고사로 처리했죠. 그러나 나는 다르게 봐요. 이 음반을 자꾸 들을수록, 그리고 앨범 재킷의 사진을 보면 볼수록 그는 휴식을 선택했다는 쪽으로 생각이 자꾸 기울거든요.”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중에서, p59~60

  재즈사에서 보면 뛰어난 뮤지션들은 정말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스윙이 유행하던 시절 빅 밴드를 이끌던 베니 굿맨, 카운트 베이시, 듀크 엘링턴도 있고, 비밥으로 넘어가면서 찰리 파커, 셀로니어스 몽크, 디지 길레스피, 쿨 재즈의 시대를 대표하는 마일스 데이비스와 재즈 피아니스트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빌 에반스, 보사노바를 재즈에 접목한 스탄 겟츠, 그리고 색소폰 연주자인 소니 롤린스와 존 콜트레인 등의 걸출한 뮤지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쳇 베이커는 제가 제일 사랑하는 재즈 트럼펫 연주자 중 한 사람입니다. 

  쿨 재즈가 LA와 샌 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서부의 해안 지역에서 백인 뮤지션을 중심으로 한 웨스트 코스트 재즈(West Coast Jazz)라고 부르는 재즈의 한 장르로 발전하였는데, 쳇 베이커는 이 웨스트 코스트 재즈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표현한 것처럼 그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목소리는 마음에 울림을 줍니다. 특히 이 마지막 실황 앨범에 녹음된 My Funny Valentine은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 들기까지 합니다. 

  다른 재즈 스탠다드곡이 그렇듯이 My Funny Valentine도 많은 재즈 가수들이 불렀는데, 쳇 베이커의 목소리보다 더 마음을 끄는 노래는 찾아볼 수가 없네요. 

  원래 이 곡은 가을밤에 듣는 게 더 좋긴 하지만, 오늘따라 유독 생각이 많이 나서 한 번 끄적거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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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deborah.tistory.com BlogIcon Deborah 2018.04.24 06:13 신고

    마음에 쉼을 주는 음악이네요.
    참 편안하게 들었네요.
    위의 곡은 워낙 유명한 곡인지라.
    예전에 많이 들었던 노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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