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 - 모리스 라벨
봄기운이 느껴지는 아침,
아침부터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아침, 곧 다가올 것만 같은 봄을 생각하다가 모리스 라벨 Maurice Joseph Ravel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라는 곡이 떠올랐습니다. 원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연주를 첨부하려다가, 문득 근황이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실망스러운 기사가 있어서 백건우 씨의 연주는 듣고 싶지 않아 졌습니다. 대신 베르트랑 샤마유 Bertrand Chamayou의 연주와 라벨이 직접 연주한 버전을 첨부합니다. 라벨이 직접 연주한 버전은 이번에 처음 듣는데, 함께 첨부한 베르트랑 샤마유의 연주보다 좀 더 빠른 연주를 보여줍니다.
베르트랑 샤마유 Bertrand Chamayou는 2001년 프랑스의 롱 티보 콩쿠르에서 4위로 입상하고, 2011년 리스트 탄생 200주년 기념 음반 [Liszt: Intégrale des années de pélerinage (순례의 해)]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연주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 신예 피아니스트입니다.
아래의 모리스 라벨이 직접 연주한 버전은 베르트랑 샤마유의 연주보다 약간 더 빠른데, 라벨이 연주하는 버전을 듣고 있자니 라벨이 이 곡을 연주했던 Charles Oulmont라는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나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쓴 것이지 왕녀를 위한 죽은 파반느를 쓴 것이 아닐세 I have written a Pavane for a dead princess -- not a dead Pavane for a princess."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생각납니다.
16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춤곡, 파반느 Pavane
파반느 Pavane (파반이라고 읽어야 합니다만)는 르네상스 시대인 16세기 초엽부터 17세기 중엽까지 유럽에서 유행하던 2박자와 4박자의 춤곡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파반느는 1508년 베니스에서 오타비아노 페트루치 Ottaviano Petruccio의 영향력 있는 류트 Lute 곡 모음집의 4권에 실린 조안 암브로시오 달자 Joan Ambrosio Dalza의 곡이라고 합니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니 Thoinot Arbeau의 "Belle qui tient ma vie"에 맞춰서 춤을 추는 동영상이 있습니다.
16세기 후반 들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춤 자체는 보기 힘들어졌지만 영국의 버지널 음악(Virginal - 하프시코드보다 작은 형태의 건반악기)이나 독일의 관현악 모음곡 등에서도 계속 연주되던 형태입니다. 근대에 들어서 생상, 라벨, 포레 등이 명곡을 남기면서 유명해진 곡의 형태입니다. 그중에서도 가브리엘 포레의 파반느는 드라마 오프닝에서 사용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곡이 되었습니다.
Pavane for a dead princess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라벨은 본인이 작곡한 'Pavane for a dead princess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대해 "an evocation of a pavane that a little princess might, in former times, have danced at the Spanish court 옛날에 스페인 궁정에서 어린 왕녀가 추는 파반(춤곡)에 대한 회상"이라고 묘사를 했습니다. 당시의 작곡가 겸 지휘자인 Manoah Leide-Tedesco가 이 곡을 어떻게 작곡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묻자 라벨은 웃으며 "놀라지 마세요, 이 제목은 곡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단지 그 단어들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Do not be surprised, that title has nothing to do with the composition. I simply liked the sound of those words and I put them there, c'est tout"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실제로 죽은 왕녀를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목에 들어 있는 'infante'와 'défunte'의 발음이 주는 느낌이 비슷해서 그렇게 지은 것이라는 것이지요.
대부분 알려진 이 곡에 대한 일화는 평소 좋아하던 스페인 궁정화가인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의 그림들 중에서, 그가 자주 그리던 소재인 <왕녀 마르가리타> 연작을 좋아하던 중에 왕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추모곡으로 썼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클래식 애호가들은 이 사연을 더 좋아하는 듯합니다만....
벨라스케스의 작품 <시녀들(Las Meninas)>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있는 벨라스케스 자신과 함께 마르가리타 왕녀가 나옵니다.
사연이 어찌 됐든 곡의 길이가 6분 정도로 짧아서 차분한 아침을 맞이하기 좋은 음악입니다. 처음에 피아노곡으로 발표했던 라벨은 10년쯤 지난 후에 관현악곡으로도 편곡을 합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버전도 좋습니다.
워낙 아름다운 선율이어서 그런지 여러 악기로 연주된 적이 많습니다. 클래식 기타는 말할 것도 없고 재즈풍으로 편곡된 연주도 있네요. 클래식 기타리스트 헤미 쥬셀메 Remi Jousselme의 연주와 쿠바 출신의 재즈 트럼페터 아르투로 산도발 Arturo Sandoval의 연주를 첨부합니다.
'alt.personal > mus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분이 처져있을 때면 가끔 떠오르는 노래, <Quizas, Quizas, Quizas> (0) | 2021.07.05 |
---|---|
비가 내릴 것 같은 오전에 듣는 쳇 베이커의 'No Problem' (0) | 2021.07.03 |
아침부터 울적해지게 만들었던 노래, Carole King의 You've Got A Friend (0) | 2021.01.11 |
House of the Rising Sun (0) | 2020.12.11 |
다시, Autumn Leaves (0) | 2020.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