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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길에서 길을 묻다]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같은 제목으로 출판된 책이 3~4권 정도 되는데, 저는 그 책은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책 제목이 워낙 인상 깊어서인지 여기저기서 비슷한 제목을 갖다 쓰는 현상을 보긴 했네요. 오늘은 책 얘기가 하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책 제목을 빌려서 하는 잡담입니다.

  길 위에 서서 길을 묻기 위해서는 일단 길 위에 서 있어야 하는데, 잠시 쉬느라 길 밖으로 너무 멀리 나와서인지 다시 그 길을 찾아 들어가다가 오히려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뜬금없이 예전에 속초로 바람 쐬러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면서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서 찍었던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는데, 정작 바람을 쐬러 갔던 속초에서의 사진은 하나도 없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찍은 울산바위 사진만 남아 있네요.


  아침부터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건 밤새 꾼 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 길을 떠나는 중에 아는 분을 만나서 잠시 길을 같이 가다가 헤어질 때가 되어 작별 인사를 하는 꿈이었습니다. 꿈속에서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나려다 잠시 앉아서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깼습니다. 꿈을 꾸고 일어났는데, 여전히 꿈속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종일 멍하니 앉아 있다가 쌓여 있는 책 속에서 좀 얇은 책 하나를 손에 잡히는 대로 들었더니 기형도 시인의 시집 [입속의 검은 잎]이 나옵니다. 시집에 실려 있는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중 한 구절이 오늘따라 비수가 되어 찌릅니다.


......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 기형도 시집 [잎속의 검은 잎] p.45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中에서


박노해 시인의 "오늘은 다르게"에 나오는 한 구절 또한 떠오릅니다.

폭풍우 지나간들 무엇하리

꽃심을 지닌 땅이어야 꽃이 피어나지


햇살이 눈부신들 무엇하리

미래를 품은 나무라야 열매를 맺지


    - 박노해 산문집 [오늘은 다르게]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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