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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 고종의 잠저(潛邸)

  안국역 4번 출구에서 종로쪽으로 , 혹은 종로3가에서 낙원상가를 지나 북촌 쪽으로 걷다 보면 운현초등학교와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옆에 흥선대원군의 사저(私邸)이며 고종이 즉위 전 12세까지 살았던 잠저(潛邸)였던 운현궁이 나옵니다. 운현(雲峴), 우리말로 풀이하면 '구름재'가 되는 이 이름은 기상을 관측하던 관청인 관상감의 별명인 서운관(書雲觀)이 있던 고개라는 지명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운현궁은 처음에는 '흥선군 집' 혹은 '대원군 궁'으로 부르다가 고종 즉위 이후 고종실록에 '운현궁과 금위영 사이에 특별히 문을 세우라'라고 하는 기록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운현궁은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양관, 영로당, 아재당, 육사당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과 경비 및 관리 건물인 수직사만 운현궁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노안당(老安堂)

  운현궁의 정문을 들어서면 안내소와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건물인 수직사가 있고, 그 옆으로 솟을대문 2개가 보입니다. 하나는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으로 가는 대문이고, 나머지 하나는 안채인 노락당(老樂堂)과 이로당(二老堂)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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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안당으로 통하는 솟을대문 옆의 네모난 돌은 흥선대원군이 타고 다니던 바퀴 달린 가마에서 내릴 때 사용하던 노둣돌이라고 부르는 하마석(下馬石)입니다.


  운현궁의 사랑채였던 노안당(老安堂)은 고종이 즉위한 직후인 1864년에 건립한 건물로, 논어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인 자로의 대화에서 나오는 "노자老者를 안지安之하며"라는 글귀에서 노안당이라는 이름을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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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路曰 願聞子之志하나이다

子曰 老者를 安之하며 朋友를 信之하며 小者를 懷之니라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의 뜻을 듣고자 합니다"라고 청하자,

공자는 "노인을 편안하게 해 주고, 친구를 믿어주며, 젊은이를 감싸주겠다"고 답하였다. 

  노안당은 아들이 왕이 됨으로써 그 노후를 편안하게 살게 되어서 흡족하다는 의미로 해석을 합니다. 흥선대원군이 주로 거처했던 곳으로 고종 즉위 후 주요 개혁정책이 논의되었던 건물이기도 합니다. 노안당의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자를 집자(集字)해서 제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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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락당(老樂堂), 하늘과의 거리가 한 자 다섯 치(去天五尺)

  노안당을 뒤편의 중문을 지나면 나오는 노락당은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로 주로 결혼, 회갑 등 큰 가족 행사가 있을 때 주로 이용했던 안채 건물로, 1864년 노안당과 함께 건립된 건물입니다. 1866년 당시 15세의 고종과 16세인 명성황후가 가례를 올린 곳도 바로 이곳 노락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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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의 거리가 한 자 다섯 치(去天五尺), 이 내용은 흥선대원군이 머물렀던 운현궁의 건물 중 하나인 노락당(老樂堂)에 걸려 있던 현판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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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락당기(老樂堂記),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노락당은 명성황후가 삼간택이 끝난 후 왕비 수업을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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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락당 뒤쪽에 보이는 서양식 건물은 운현궁의 부속건물이었던 양관으로 일제가 경술국치 조약에 앞서 왕족들을 회유하기 위해 만들어준 건물입니다.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의 본관으로 사용하다가 최근에는 보존을 위해 비워둔 상태라고 합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역할인 공유와 저승사자 역할인 이동욱이 같이 살던 그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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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락당을 나서면 이로당으로 가는 길의 반대편에 솟을대문이 있는데, 이 솟을대문은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에 해당하는 노락당과 이로당을 위한 출입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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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당 가는 길>


이로당(二老堂)

  노락당과 더불어 운현궁의 안채 역할을 하던 건물입니다. 노안당과 노락당보다 늦은 1869년(고종 6년)에 완공되었으며, 마당에서 볼때는 ㄱ자 형태지만 바깥 남자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안쪽으로 ㅁ자 형 구조에 가운데는 작은 마당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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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현궁의 안채로 노락당이 있었지만 명성황후가 운현궁에 머물 때 노락당을 거처로 사용하면서 운현궁의 안주인이었던 부대부인이 머물 안채가 필요해서 추가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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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로당(二老堂)의 편액도 노안당과 마찬가지로 추사의 글씨를 집자하여 모각하였습니다. 二老는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 민씨를 지칭하는 것으로 '두 노인 二老을 위한 집'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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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현궁을 한 바퀴 돌아도 고종이 12살까지 자랐다는 잠저(潛邸)에 대한 안내는 찾아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지금 남아 있는 운현궁 부지가 아닌 일본 문화원 옆의 래미안갤러리 자리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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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청 마루에 잠시 걸터 앉아서 쉴 수도 있어서 주말에 근처에 볼 일이 있다면 한 번 들러볼만 한 곳입니다.

  너무 덥지 않은 주말이라면 한 번 나들이 삼아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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