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소설 '애프터 다크'에 나오는 재즈곡들
2020. 7. 24.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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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Dark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항상 재즈곡이 등장을 합니다. 하루키는 특정 장면에 대해 장황하게 서술하기보다 노래를 집어넣으면서 그 장면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방법을 즐겨 쓰는데, 읽는 입장에서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아는 곡은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그 부분을 읽어나가고, 잘 모르는 곡은 찾아서 들으면서 책을 읽기를 즐깁니다.
며칠 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애프터 다크"에서는 영화 장면 같은 카메라 워킹도 묘사를 하고 있는데, 역시 그의 다른 소설에서처럼 많은 노래들이 나옵니다. 책을 읽다가 나중에 다시 찾아보거나 하기 귀찮을 것 같아서 아예 재생목록 같은 걸 만들면 어떨까 싶어 포스팅합니다.
Percy Faith - Go Away Little Girl
작은 소리로 홀에 흐르는 음악은 퍼시 페이스 악단의 <고 어웨이 리틀걸>. 물론 아무도 듣지 않는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심야의 '데니스'에서 식사하고 커피를 마시고 있지만, 여자 혼자 온 손님은 그녀뿐이다.
Curtis Fuller - Blues ette - Five Spot After Dark
"중학교 때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블루스엣>이란 재즈 레코드를 우연히 샀어. 아주 예전 엘피. 왜 그런 걸 샀을까. 기억이 안 나. 그때까지 재즈는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어쨌든 A면 첫 곡으로 <파이브 스폿 애프터 다크>란 곡이 들어 있었는데, 이게 참 절절하게 좋더라고. 트롬본을 부는 건 커티스 풀러. 처음 들었을 때 두 눈에서 콩깍지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 같더라. 그래, 이게 내 악기다 싶었어. 나하고 트롬본. 운명적인 만남."
Burt Bacharach - The April Fools
마리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가 준 쪽지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계산서 옆에 놓는다. 그러고는 호흡을 가다듬고, 턱을 괴고, 독서로 돌아간다. 홀에는 버트 배커랙의 <에이프릴 풀>이 나지막이 흐르고 있다.
Martin Denny - More
전과 마찬가지로 '데니스' 안. 마틴 데니 악단의 <모어>가 비지엠으로 흐르고 있다. 삼십 분 전에 비해 손님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밤이 한층 깊어진 느낌이다.
Art Tatum & Ben Webster - My Ideal
두 사람은 작은 바의 카운터에 앉아 있다. 다른 손님은 없다. 벤 웹스터의 오래전 레코드를 틀어놓았다. <마이 아이디얼>. 1950년대 연주다. 시디가 아니라 옛날식 엘피 레코드가 마흔 장 내지 쉰 장쯤 선반에 꽂혀 있다.
Duke Ellington - Sophisticated Lady
희미한 스크래치노이즈. 이어서 듀크 엘링턴의 <소피스티케이티드 레이디>가 흘러나온다. 해리 카니의 나른한 베이스 클라리넷 솔로. 바텐더의 여유 있는 움직임이 이곳에 독특한 시간의 흐름을 부여한다.
Pet Shop Boys - Jealousy
'스카이락' 화장실에서 마리가 손을 씻고 있다. 지금은 모자도 쓰지 않았다. 안경도 쓰지 않았다. 천장의 스피커에서 펫 숍 보이스의 예전 히트곡이 작은 음량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젤러시>. 큼직한 숄더백이 세면대 옆에 놓여 있다.
Daryl Hall & John Oates - I Can't Go For That (No Can Do)
거울 속 마리는 저쪽에서 이쪽을 보고 있다. 진지한 눈으로 뭔가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듯. 하지만 이쪽에는 아무도 없다. 그녀의 이미지만 '스카이락' 화장실 거울 속에 남아 있다.
주위가 어슴푸레해진다. 깊어가는 어둠 속에 <아이 캔트 고 포 댓>이 흐른다.
Ivo Pogorelich - Bach - English Suite No.2 in A minor, BWV 807
넓은 공간이다. 동료들이 모두 가고 난 사무실에 그는 혼자 남아 일하고 있다. 책상 위에 놓인 소형 시디플레이어에서 적절한 음량으로 바흐의 피아노곡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보 포고렐리치가 연주하는 <영국 모음곡>. 사무실 전체는 어두운데 그의 책상이 있는 부분만 천장에서 형광등 불빛이 비춘다. 에드워드 호퍼가 '고독'이라는 제목으로 그릴 법한 광경이다.
Curtis Fuller - Bues ette - Five Spot After Dark
편의점 안. 다카나시 저지방 우유팩이 냉장 쇼케이스 안에 놓여있다. 다카하시가 <파이브 스폿 애프터 다크>의 테마곡을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우유를 고르고 있다. 짐은 없다.
Sonny Rollins - Sonnymoon For Two
전자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와 드럼 트리오를 배경으로 다카하시가 긴 트롬본 솔로를 불고 있다. 소니 롤린스의 <소니문 포 투>. 그렇게 빠르지 않은 템포의 블루스. 나쁘지 않은 연주다. 테크닉보다 프레이즈를 거듭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으로 음악을 들려준다. 사람됨 같은 게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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