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방학의 '속아도 꿈결'
<출처 : https://pixabay.com/en/butterfly-blue-forest-fantasy-2049567/ >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인디밴드 가을방학의 1집에 실려 있는 노래인 '속아도 꿈결'을 며칠 째 흥얼거리는 중입니다. 가을방학의 노래는 한동안 안 듣고 있었는데도 가을이라 그런지 멜로디가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EBS의 음악프로그램 '공감'에 출연했을 당시의 영상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이 곡의 제목인 '속아도 꿈결'은 이상의 마지막 단편 소설인 '봉별기'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목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합니다.
밤은 이미 깊었고 우리 이야기는 이게 이 생(生)에서의 영이별(永離別)이라는 결론(結論)으로 밀려갔다. 금홍이는 은수저로 소반 전을 딱 딱 치면서 내가 한 번도 들은 일이 없는 구슬픈 창가(唱歌)를 한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心情)에 불질러 버려라 운운(云云).」
- 이상 '봉별기' 중에서
출처 : http://ko.kliterature.wikidok.net/wp-d/57ea4215d7bdad5d015ffc64/View
이상의 '봉별기'는 이상의 자서전적인 소설입니다. 건강이 나빠진 주인공인 '나'는 휴양을 위해 온천으로 요양을 떠나는데, 여관방에서 무료한 요양 생활을 견디다 못해 3일 만에 기생집에 찾아가서 '금홍이'를 만나게 되어 눈이 맞아 같이 살게 되지만, 맞지 않는 서로의 생활에 결국 헤어지게 되고 몇 년 뒤 다시 만나서 '이 생(生)에서의 영이별(永離別)이라는 결론(結論)으로 밀려'가면서 금홍이가 노래를 부르며 끝이 나는 내용입니다. 금홍이가 부르는 그 노래의 가사가 '속아도 꿈결'의 마지막 구절인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로 시작하는 노래입니다.
'봉별기'에 나오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보면 현실은 그냥 그대로 흘러가는 맞설 수 없는 거대한 파도이고, 그 파도에 맞서 싸울 의지도 하나 없이 피하는 쪽으로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도 안 되는, 아픔이 곪아 터져서 더 이상 아픈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슬픔도 느껴집니다.
'속아도 꿈결 / 속여도 꿈결 /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 그늘진 심정에 불 질러 버려라'라는 마지막 구절이 자꾸 입안에 맴도는 가을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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