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령사, 제비꽃
봄의 전령, 제비꽃
꽃샘추위를 건너뛰고 봄이 오는 듯 3월 초부터 날씨가 따뜻하더니 본격적으로 봄이 오는 4월에 꽃샘추위가 샘이 났나 봅니다. 한 겨울에 비하면 춥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수준이지만 15도를 넘나들던 날씨에서 갑자기 3~5도를 맴도니 손이 저절로 곱아집니다. 일찌감치 겨울옷을 옷장 깊숙이, 혹은 겨울용 옷 보관함에 집어넣은 사람들을 골탕 먹이고 싶어 졌나 봅니다.
제비가 돌아올 때쯤 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제비꽃은 작년에도 몇 번 포스팅한 적이 있어서 제비꽃 포스팅은 건너뛸까 했는데, 집 앞 길지 않은 산책길 옆에 핀 제비꽃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최근에 읽은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에 실린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면 됩니다'에 제가 좋아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면 됩니다.
꽃들은 남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제비꽃은 결코 진달래를 부러워하지 않고, 진달래는 결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한껏 꽃 피우다가 떠날 시간이 되면 아무 말 없이 떠나갑니다. 만일 제비꽃이 진달래를 부러워하고 진달래가 장미를 부러워한다면 꽃들의 세계에서도 인간들과 똑같은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고 말 것입니다.
...........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고, 진달래는 진달래답게 피면 됩니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듯이 세상에 쓸모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의 인생이든 인생의 무게와 가치는 똑같습니다. 다만 내가 나의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뿐입니다.
.... 이후 생략.....
- 정호승,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2006) 중에서
제비꽃은 많은 시인들이 노래를 했지만, 오늘따라 눈에 들어오는 시는 1780년대 후반에 태어나 1824년까지 살았던 영국의 시인인 제인 테일러 Jane Taylor의 제비꽃 Violet 이 들어옵니다.
제비꽃
- 제인 테일러 Jane Taylor
푸른 그늘 속 화단 안에
다소곳한 제비꽃 한 송이
줄기를 굽혀 머리를 숙인 모양이
마치 사람 눈을 피하고 있는 듯.
그래도 제비꽃은 사랑스럽고
색깔은 밝고 선명하여
그런 곳에 숨어 피느니보다는
장밋빛 방을 장식하는 게 어울리리라.
하지만 아무런 불만 없이 피어
단정한 색깔로 차려입고
나긋한 떨기 무성한 그 속에
달콤한 향기를 꼭 안고 있다.
나도 그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게
골짜기로 가게 해 다오.
제비꽃이 지닌 우아하고 겸허한 길을
나도 배울 수 있게 해 다오.
원문도 같이 첨부합니다.
The Violet
- Jane Taylor
Down in a green and shady bed,
A modest violet grew,
Its stalk was bent, it hung its head,
As if to hide from view.
And yet it was a lovely flower,
Its colours bright and fair;
It might have graced a rosy bower,
Instead of hiding there,
Yet there it was content to bloom,
In modest tints arrayed;
And there diffused its sweet perfume,
Within the silent shade.
Then let me to the valley go,
This pretty flower to see;
That I may also learn to grow
In sweet humility.
시도 좋고 에세이도 좋지만 그래도 '제비꽃'이라고 하면 언제나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조동진 씨가 1985년에 발매한 3집에 실린 노래 '제비꽃'입니다. 예전 포스팅에서, 그리고 얼마 전의 포스팅에서 조동진이 부른 '제비꽃' 링크를 걸었는데, 장필순의 목소리로 듣는 '제비꽃'도 좋네요.
제비꽃
- 조동진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땐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땐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눈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
유난히 추운 4월의 봄날 아침입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는데, 이제 그만 그 끈을 놓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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