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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4월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아침저녁으로는 손이 곱을 정도로 쌀쌀한 날씨에 더 이상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절망을 노래하기로 했습니다. 어두컴컴해진 하늘 아래 돋아나는 새싹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맺힐 것 같은 장면을 보면서 차라리 우박이라도 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고 긴 절망 속에서, 그나마 아주 희미한 밝음이라도 보일 때 자라나는 것이 희망입니다. 그래서 희망은 마지막으로 가질 수 있는 간절함이기도 합니다. 끝없는 절망 위에서 아주 작은 싹을 틔우며 자라나는 게 희망이지만, 혹여라도 불어오는 꽃샘추위에 사그라들며 더 깊은 절망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섣부른 희망은 더 무섭습니다. 

  여전히 캄캄한 어둠 속에서 몸부림쳐 오기를 수년째, 앞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미래에 대한 불안만이 가득한 시점에서 이미 희망은 그 역할을 잃었습니다. 어차피 오지 않을 희망이라면 내 쪽에서 먼저 거절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오지 않을 희망을 기다리면서 버티느니 차라리 스스로 놓아버리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 근처 야트막한 언덕배기를 따라 만들어 놓은 공원에 가득 핀 진달래를 보다가 정호승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르면서, 나는 희망을 거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어디로 가야 하나
달도 뜨지 않고
가로등도 다 꺼져버린 밤길에
나에게 아직 사용하지 않은 인생은 남아 있는가
나누어주어야 할 사랑은 남아 있는가
절망은 희망을 딛고 서 있지만
희망은 무엇을 딛고 서 있는가
......
    - 정호승, '희망의 밤길' 중

 

  봄비가 부슬부슬 오던 날 아침, 미처 피지 못한 채 떨어져 있던 벚꽃 봉오리가 제 마음을 대신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가 문득 떠오르는 아침입니다.

1년 전보다 나아진 것은 없다. 나는 여전히 비참한 패잔병이고 더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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