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깊은 곳의 불덩이 하나

  마음속 깊이 불덩이가 가득 찬 것 같은 날, 묵직한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뭘 해도 의욕이 없습니다. 책도 손에 안 잡히고, 영화나 드라마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에릭 사티 Erik Satie의 짐노페디 1번(3 Gymnopedies No.1 Slow and painful)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약으로도 진정이 되지 않던 꽉 막힌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은 선율에 녹아듭니다.

  

  많은 광고에서 차분한 분위기를 위한 배경음악으로 사용했지만, 특히 인상에 남는 광고는 침대 브랜드인 시몬스 침대 광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광고 카피와 함께 흘러나오는 느린 선율로 정말 편안하고 차분한 곡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광고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인 "느리고 비통하게(Lent et douloureux / Slow and painful)"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곡입니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는 1888에 작곡한 3개의 곡으로 구성된 피아노 솔로 모음곡입니다. 1번 곡은 가장 유명한 곡인 느리고 비통하게(Lent et douloureux / Slow and mournfully), 2번 곡은 느리고 슬프게(Lent et triste / Slow and sad), 3번 곡은 느리고 장중하게(Lent et grave / Slow and solemnly)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짐노페디 Gymnopedie는 고대 그리스의 축제에서 젊은 남자들이 합창과 군무로 신을 찬양하던 'Gymnopaedic'에서 따온 것으로, 불필요한 장식이나 감정의 과다 노출이 없는 단순한 음악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유럽 음악계는 리스트, 바그너, 브람스 등 낭만주의 음악의 전성기를 지나고 있었는데, 에릭 사티는 낭만주의에서 벗어나서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작곡을 하면서 클래식 음악계의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3곡 전체를 다 들어도 15분 정도면 충분해서 아래에 전곡이 올라와 있는 유튜브 영상을 첨부합니다.

 

  부제가 다소 무겁고 어둡지만, 단조로 흘러가는 메인 선율은 어쨌든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면서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을 안겨주는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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