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잠시. 보류.

2025. 2. 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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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잠시 잊고 있었다. 아주 잠시...

  톱니바퀴 하나가 사라지면서 시작된 경로 이탈과 함께 엉망진창으로 삶이 무너지던 그 날, 사라질 장소를 찾아 떠났었다.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그나마 괜찮은 식사를 하고 하룻밤을 더 보낸 후 사라질 결심을 다진 다음, 무심코 꺼 놓은 핸드폰을 잠시 켜기 전 까지만 해도.

  <오늘도 돌아갑니다. 풍진동 LP가게>라는 소설을 읽다가 문득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정원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레코드판을 바라보고 들으며 밤을 꼬박 지새웠다. 그리고 어느덧 창밖에 희뿌연 아침 기운이 비쳐들자 비로소 깨달았다. 어쩌면 다시는 누리지 못할 시간을 누렸던 거라고. 그렇다고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로 한 결심을 아주 접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잠시.
보류.
<오늘도 돌아갑니다, 풍진동 LP가게>, 임진평, 고희은

 

  ... 보류했던 결심을 이제 어떻게 해야 할 지 짐작도 하지 못하겠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려는 걸까. 내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 나.는. 대.체. 어.디.로. 와. 버.렸.을.까.?
여긴 대체 어디일까?
아니, 그보다 근본적으로, 나는 대체 누구인가?

<기사단장 죽이기>,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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